얼마 전 만난 중국의 초임 외교관은 “일본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고 담담히 포부를 밝혔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유학한 밝은 표정의 20대 외교관의 모습에선 일본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다른 외교관은 “중국은 외교관 선발 때부터 한국, 일본 등 지역과 언어별로 따로 모집한다”고 말했다. 시작 단계에서 전문 분야가 정해지는 셈이다. 한반도 업무에 발을 들여놓은 외교관은 주한대사관, 주북한대사관, 중국 외교부 본부의 한반도 문제만 맡아 오랜 현장 경험을 쌓는다.
“알고 지내는 한반도 담당 중국 외교관으로부터 한참 소식이 없으면 북한에서 근무하고 있는 거예요.” 중국을 잘 아는 한 한국 외교관이 웃으며 들려준 얘기다.
한국통 닝푸쿠이 전 주한 중국대사(부임 기간·2006∼2008년)를 지난해 12월 장쑤성 옌청시에서 열린 포럼에서 만났다. 한 번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뭐해요?”라며 한국어로 호쾌하게 말을 거는 모습이 친숙했다. 한국에 오랜 친구가 많다는 그는 64세의 나이에 현직인 외교부 한반도사무부대표를 맡고 있다. 43년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한반도 업무로 보낸 그는 1972년 유학차 북한에 처음 갔고, 4년간 열심히 공부해 한국말을 능통하게 쓸 정도가 됐다.
그의 주한 중국대사 후임이 바로 청융화 현 주일 중국대사다. 청 대사는 9년간 주일대사로 근무했다. 일본에서만 25년을 지낸 일본통이다. 청 대사 후임으로 거론되는 쿵쉬안유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도 일본에서 12년간 근무했다.
지난달 8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장. 회견이 끝나갈 즈음 일본 기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 관련 질문을 던졌다.
“중일관계는 (그동안 안 좋아서) 매번 기자회견마다 주목 대상이었습니다. 질문도 빨리 나왔죠. 올해는 마지막에야 질문이 나왔군요. 양국 관계가 이미 안정적이라는 뜻입니다.”
주일대사 출신의 왕 위원이 중일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노련한 방식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중국 외교부의 아주사(아시아국) 산하 남북·일본·몽골 담당처(과)장은 예전엔 한국통이었지만 지금은 일본통이 맡고 있다. 최근 중일관계의 빠른 개선 기류가 나타나는 것은 현장에서 전문성을 키운 일본통들이 말단에서 고위직까지 포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외교 경험이 없는 정치권 인사, 교수들이 대사직을 차지해 1년여 만에 부랴부랴 돌아오는 한국의 미중일 외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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