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길래 씨(68·여)는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4일 저녁 시작돼 강원지역을 휩쓴 산불이 그의 집을 덮친 이후 김 씨는 매캐한 연기가 남아있는 집터에 매일 가본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다 타버린 그의 집은 김 씨가 25년을 고스란히 바쳐 일군 안식처였다. 난방조차 되지 않던 허름한 오두막집을 살 만한 집으로 바꾸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강릉지역 논밭을 다니며 씨 심는 일을 돕는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루 12시간 일해 받은 일당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집수리를 했다. “삽자루 들고 강릉 돌아다니며 한 푼 두 푼 번 돈으로 다 고쳐놨는데….” 김 씨는 기자 앞에서 거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번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 1000명을 넘는다. 대부분이 젊은 시절부터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이다. 다 타버린 집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삶의 뿌리가 뜯겨 나가는 고통이다. 전문가들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보다 더 큰 고통일 수 있다”고도 말한다.
47년간 살아온 집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정연표 씨(82)에게 집은 가족 그 자체였다. “1901년생 아버지 때부터 그 집에서 살았어. 결혼하고 바로 옆집으로 분가해 평생을 살았는데 이젠 흔적도 없어.” 한 할머니는 무너져 내린 집 앞에 주저앉아 “아버지가 물려주신 100년이 넘은 집을 못 지켰으니 다 내 탓”이라며 허탈해했다.
이런 상실감과 죄책감이 계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산하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당장은 멍한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상실감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털어놓을 자녀나 친구가 주변에 없으면 더 심해질 수 있다.
6년 전 남편을 잃고 강릉에 혼자 사는 김모 할머니(70)는 “두 달이고 석 달이고 마을회관에 있는 게 정부에서 주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옆에서 말 걸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당장의 임시 거처나 구호물품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다.
정부도 강원지역 대피소에 적지 않은 상담 활동가들을 투입해 이재민들을 돕도록 하고 있다. 약 1000명의 이재민 심리상담에 투입된 인력은 모두 77명. 1명이 이재민 13명을 맡는 셈이다. 민간 심리단체들도 대피소를 찾아 상담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상처를 털어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이재민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들의 다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충분한 상담인력을 지원하고 일회성 상담에 그치지 않는 세심한 보살핌이 이어져야 재난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 강릉에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