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청은 이달 6∼7일 상암동 한 아파트 단지 진입로를 5cm 깊이로 깎은 뒤 새 아스팔트를 깔았다. 도로에 균열이 많아 비가 오면 구멍(포트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틀 치 공사(폭 3.5~8m, 길이 360m)에 5000만 원이 나갔다. 공무원 중에는 ‘선제적 행정’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포구는 균열이 생긴 증거사진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멀쩡해 보이는 땅을 깎을 만큼 돈이 남아도느냐, 더 급한 일이 없느냐고 했다. 작년 마포구 재정자립도는 31.5%였다.
일부 시군구의 방만한 행정문제로만 보이는 보도블록 교체나 아스팔트 새로 깔기는 중앙정부의 주먹구구식 재정운용과 맞물려 있다. 이달 정부가 추진하는 6조 원대 추가경정예산은 재정이라는 저고리를 입으면서 잘못 끼운 위쪽 단추, 뜬금없는 동네 포트홀 공사는 제 구멍 찾지 못한 아래쪽 단추인 셈이다.
○ 엉터리 전망에 돈 물 쓰듯
한국 예산은 겉보기에 예산안 편성, 심의, 집행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하지만 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편성 단계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는 매년 6∼7월경 이듬해 세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추정한다. 예산규모를 잡기 위한 세수추계 단계다. 경제성장률, 환율 및 이자율 전망치, 임금상승률, 세수 진도율이 핵심 변수다. 이걸 토대로 모든 세금 항목별로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따진다.
세계 경제가 미중 무역분쟁에 요동치고 돈을 다시 푸느냐 마느냐 하는 국면에서 1년 뒤를 예측하는 건 어렵다. 고차원 경제모형으로 추정한다지만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무엇보다 7월까지는 다음 해 최저임금 수준을 알 수 없다. 추계를 하는 조세재정연구원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는 아래쪽 임금이 오르는 폭에 따라 위쪽 임금이 영향 받는 연결고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렇게 나온 세수추계는 정확할까?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에게 물었다.
“엉터리다. 세수추계모형을 돌려서 숫자를 산출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종 결정은 ‘감(感)’으로 한다. 기재부 세제실과 예산실이 협의해서 숫자를 낸다.”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한 뒤 최종 추계는 관료의 직감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세수 부족의 책임을 져야 하는 세제실은 세금이 실제보다 적게 들어오는 방향으로, 확장적 재정파인 예산실은 세금이 많이 들어오는 쪽으로 추계하려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매년 세수가 크게 남거나 모자랐던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세제실 목소리가 크면 결과적으로 초과 세수, 예산실의 목소리가 크면 세수 부족이 되는 것인가. 슈퍼 예산을 준비하는 한국 재정의 민낯이 이렇다.
중앙정부는 이미 올해 본예산에서 지방교부세로 52조4600억 원을 떼어줬다. 계획상으로는 이것 말고도 초과세수가 25조 원 넘게 발생해 국가재정법에서 정한 비율(39.51%)대로 10조500억 원을 지방에 추가로 보낸다. 편성을 앞둔 추가경정예산에서도 상당 부분이 지역 몫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정부가 내려보내는 교부세를 많이 받는 구조니 지방으로선 건전재정보다는 돈 쓰기에 급급하다. 세수 전망이 정확했다면 본예산을 통해 꼼꼼하게 자금이 배정되고 지방의 헛된 땅파기도 줄었을 것이다.
○ 고착화하는 ‘상반기 조기집행, 하반기 추경’
정부는 소비와 투자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매년 1분기(1∼3월)부터 예산을 조기 집행한다. 2분기 이후 배정할 돈을 당겨서 경기를 띄우려는 것이다. 올해 중앙정부 재정 291조6000억 원 중 2월 말까지 쓴 돈이 60조3000억 원(20.7%)이다. 당초 계획(49조9000억 원)보다 10조4000억 원 더 썼다.
기재부는 연초 예산을 배정하지만 이때 실제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분기별로 세금을 거둬 국고에 돈이 들어온 뒤 자금 배정 절차에 따라 재정이 나간다. 예산을 당겨쓰다 보니 당장 쓸 돈이 부족해지기 쉬운 구조다. 재정증권 등 국채를 발행하거나 한국은행에서 잠깐 돈을 빌려 부족분을 메우는 응급처방을 동원한다. 이미 올 1분기 국채 발행액은 48조52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다.
당겨쓸 돈이 바닥날 무렵 추경 논의가 고개를 든다. 정부 당국자는 “경제가 위축될 때 추경을 안 하면 정책 수단이 없다”며 ‘상반기 조기집행, 하반기 추경’ 구도가 고착화한 지 오래라고 했다. 그렇다고 재정의 문지기격인 기재부가 먼저 추경을 하자고 손을 들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정부는 여당에 바람을 잡아달라고 요청하고 언론에는 ‘추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운을 띄운다.
올해는 국제통화기금(IMF) 미션단이 “한국은 추경을 통해 확장적 재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바람을 잡았다. 2월 27일부터 2주간 한국 정부와 협의한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 자리를 빌렸지만 IMF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추경 의견을 내기로 했다. 기재부 당국자는 “IMF 미션단이 자기네 부총재급과 의견을 나눈 결과라고 들었다”고 했다. ‘기재부가 IMF 미션단에 추경을 언급해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느냐’고 물으니 이 관료는 정색하며 펄쩍 뛰었다.
○ ‘헬리콥터’로 뿌린 돈 다 어디 있나
추경으로 돈을 뿌리다시피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었을까. 2000년대 들어 추경은 2007년, 2010∼2012년, 2014년 등 다섯 해를 빼고 매년 편성됐다. 2001년과 2003년에는 1년에 2번 편성했다. 유가 급등,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구조조정, 고용난 등 때마다 계기가 있었지만 경기부양이라는 모호한 이유가 덧붙여져 추경 규모가 불어났다.
정작 추경 효과는 크지 않았다. 2013년 저성장을 이유로 17조3000억 원의 추경을 투입했지만 국내총생산(GDP)은 5조 원 남짓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 소비만 1.9%(3조6600억 원) 늘었을 뿐 추경이 궁극적으로 늘리려 한 민간소비는 0.1%(7000억 원) 증가에 그쳤다. 그야말로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버린 셈이다.
추경은 본예산을 확정한 뒤 발생한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추가하는 예산이다. 추경 사업들을 보면 이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추경 사업 136건 가운데 66건(48.5%)은 일자리와 직접 관련이 없었다. 특히 추경 예산 3조8000억 원 중 신규 사업 비중은 10% 선에 그쳤다. 본예산이나 기금사업으로 편성된 기존 사업에 돈을 더 넣은 것이다. 정치적 사업에 편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문지기 사라진 나라곳간, 추경중독 만성화
급하게 짠 추경 예산안을 정교하게 심사해야 할 국회는 민원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국회의원들의 생리를 잘 아는 정부는 추경 예산 중 일부를 나눠주며 손쉬운 거래를 한다.
일부 공무원은 작년 본예산 때 반영하지 못한 의원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수단으로 추경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험을 들어둔 덕일까. 이미 국회에는 기재부 예산실 출신이 수두룩하다. 이 중 한 명이 과거 예산실에 있을 때 지역별 예산 배정 현황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예산을 정치적으로 보지 말라”고 했던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의원이 된 뒤 그는 지역구에 가서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내가 만난 예산실장들은 모두 ‘오리 비유’를 좋아했다. 물 위에선 평온하지만 물 밑에선 쉼 없이 발을 바쁘게 젓는 모습이 자신을 닮았다는 것이다. 추경과 내년 예산안 편성이 코앞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이 나라곳간 문을 지키는 대신 민원성 예산을 나누느라 바쁘게 뛰어다닌다면, 내년에도 어설픈 추경 구실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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