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8> 스타트업 101명이 본 ‘규제 철벽’
“내가 직접 만나 봐서 안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를 완화하라’고 지시해도 공무원은 바뀌지 않는다.”
봉사, 희생, 합리성 등 긍정적인 응답은 찾기 어려웠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스타트업 운영자들이 체험한 규제 공무원의 모습은 ‘복지부동’ ‘책임회피’ 등 부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스타트업 운영자 10명 중 7명은 정부가 규제 혁파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로 공무원 그 자체를 꼽았다. 동아일보가 O2O(온·오프라인 연계), 모빌리티, 핀테크, 바이오, 의료 등 신산업 분야 스타트업 운영자 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인터뷰 결과다. 이들의 76.5%는 ‘대통령의 규제 완화 지시가 공무원들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 “규제 자체보다 이를 지키려는 공무원이 더 문제”
우선 스타트업 운영자들이 공무원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본 답변을 물어봤다. “그건 ○○법과 ○○지침 때문에 안 됩니다”(66.3%·이하 복수 응답)가 가장 많았다. 이어 “그건 저희 소관 업무가 아닙니다” “그런 전례가 없습니다”(각각 56.1%)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습니다”(34.7%) “제가 온 지 얼마 안 돼서요”(12.2%) 등 책임회피형 답변이 뒤를 이었다.
답변이 지연되거나 결정을 미룰 때 담당 공무원은 뭐라고 했을까. “이해 관계자나 관련 협회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50.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담당 부처와의 협의가 길어졌다”(48.0%) “담당자가 바뀌었다”(26.0%) “잘 모르는 내용이라 검토 시간이 길어졌다”(20.0%) “바빠서 아직 검토를 못 했다”(10.0%) 등의 순이었다. “아예 지연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응답도 32.0%나 됐다.
스타트업 운영자들은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문제점으로 △신산업에 대한 보수적 시각(67.4%) △일 떠넘기기 행태(56.8%) △전문성 부족(54.7%) △느린 일 처리(43.2%) △잦은 인사이동(32.6%) 등을 꼽았다. 특히 응답자 10명 중 9명(90.7%)은 사업 과정에서 공무원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거나 느낀다고 말했다. 67.8%는 “신산업에 대한 규제 자체보다 그 규제를 관장하는 공무원이 더 문제”라고 답했다.
○ 나에게 공무원은 ‘통곡의 벽’
동아일보는 스타트업 운영자들에게 그들이 겪은 공무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물어봤다.
반려동물 장례업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 대표는 자신이 만났던 규제 관련 공무원을 ‘복불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어떤 공무원을 만났느냐에 따라 사업의 합법과 불법 여부가 판가름 난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공무원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소극행정으로 사업의 기회를 놓쳤다며 공무원을 ‘백태클’ ‘통곡의 벽’ ‘허들’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시대의 흐름에 뒤처졌다며 ‘8비트 로봇’ 같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공무원을 대할 때마다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사물인터넷 벤처기업인 모바일디에스티의 김주원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의 현실을 모르다 보니 아직도 제조업 시대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의 C 대표는 “신산업과 관련 기술 민원을 제기하면 공무원들은 ‘진상 민원’처럼 취급한다”고 했다.
한국형 에어비앤비로 불리는 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공무원을 ‘적반하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가 도움을 청해 업체 노하우, 업계 현황 등 다 알려줬는데 정책이 바뀌었다면서 지원을 거부해 뒤통수 맞았다”며 “한국에선 창업을 시작하면 규제 전문가가 되고 나중엔 결국 사회 불만세력이 된다”고 성토했다. 답변 가운데는 ‘불쌍한 사람들’ ‘열심히 고생하는 분들’ 등 공무원에 대한 동정론도 있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공무원의 존재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기업인이 이렇게 많다는 점을 공직사회가 지금이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