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대해 질문하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쓴웃음부터 지었다. 올해 1월부터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도루묵’이 될 위기에 처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뒤 여야 대립이 격해지면서 최저임금법 개정이 사실상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30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꾸겠다고 나선 것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최저임금은 늘 인상률을 두고 노사 간 ‘전투’를 벌여 결정됐다. 2016년엔 근로자위원 9명 전원, 지난해엔 사용자위원 9명 전원이 표결에 불참했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익위원의 선택에 따라 인상률이 정해졌다. 최저임금은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지급 기준이 될 만큼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다. 그런데도 면밀한 논의보다는 ‘정치’에 의해 좌우됐다. 전문가 중심의 기구가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현행 최저임금위원회의 이원화를 제시했다. 전문가 9명으로 정해진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의 상·하한선 구간을 결정하면, 노·사·공익위원 21명이 있는 ‘결정위원회’가 최종 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작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의 열쇠를 쥔 국회가 휴업 상태로 시간을 지체했다. 3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최저임금의 업종·지역별 차등화를 주장하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고, 4월 임시국회에선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고용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기존 방식대로 심의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도 최근 “이번 국회에서 개편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사실상 적용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법상 다음 해의 최저임금액은 8월 5일 고시해야 한다. 올해만 고시 시점을 미루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에 무리”라며 반대했다. 기존 방식에 문제가 많아 바꾼다고 해놓고, 다시 기존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하고야 말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8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향후 심의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꼬인 데에는 일차적으론 국회가 입법을 지연한 책임이 크다. 하지만 정부도 너무 서둘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용부는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부터 새 방식을 적용하겠다며 공론화를 한 달여 만에 끝냈다. 노사단체 관계자가 참여한 토론회도 없었다. 최저임금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4개월간 노사 이해관계자 입장을 수렴했다곤 하지만 개편안에 대해 노동계, 경영계 모두 불만을 쏟아냈다.
결정체계 개편은 최저임금의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서둘러 진행됐던 개편 과정이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된 건 아닌지 이참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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