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손놓은 규제… 간이과세 혜택 기준 매출 20년째 그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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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위에 공무원, 규제공화국에 내일은 없다]
<9> 현실과 동떨어진 철지난 규제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면세품 한도, 20년째 그대로인 간이과세제도, 길게 못 보는 외환거래 규제….’

일부 세금 및 금융 관련 제도에 대해 소비자들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라고 지적하지만 규제당국은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을 주저하고 있다. 규제를 푼 결과 고소득층에 이익이 될 경우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등 공무원들이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현실과 괴리된 해묵은 규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내국인의 1인당 면세 한도는 향수 60mL, 주류 1병 등을 제외하고 총 600달러(약 70만 원)다. 이는 일본의 면세 한도인 20만 엔(210만 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의 면세 한도도 5000위안(약 85만 원)으로 한국보다 15만 원가량 높다.

한국의 면세 한도는 2014년 400달러에서 600달러로 높아졌지만 당시에도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2017년 중국 사드 사태로 면세점들이 어려움을 겪을 당시 면세 한도를 1000달러로 일시 상향 조정하자는 요구가 업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달 31일 입국장 면세점이 개장하면 면세품 구매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개인 구매품 면세는 일종의 특혜고,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당분간 면세 한도를 조정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 수가 287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당국의 인식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규가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는 기재부에 2011년 도입된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근로소득 세액공제 제도의 적용 대상을 서비스업 전반으로 넓혀 달라고 요구했다. 현행법은 농림어업, 광업, 제조업의 경우 해당 업종 전반에 근로소득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반면 서비스업의 경우 도소매업, 광고업, 부동산업 및 임대업 등 법에 명시된 특정 업종만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건업, 교육서비스업 등 신규 취업자가 많은 서비스업에 취직하는 사람은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보건업, 교육서비스업 등은 일자리 수요는 높으면서 임금 수준이 낮은 업체가 많아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기재부는 그동안 세금 혜택을 주는 근로자의 범위와 공제율을 계속 확대해 왔기 때문에 업종을 확대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 논란 적은 제도만 골라 ‘찔끔 규제 완화’

공무원들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규제 권한을 꼭 쥐고 있는 동안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결과 법규와 현실 간 괴리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불편을 호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규제 완화가 근시안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같은 분야에서 규제개선 방안이 반복해서 발표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기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9월 정부는 “송금, 환전 등 외환 분야의 혁신적 서비스 창출을 지원하겠다”며 ‘외환제도·감독체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증권사와 카드사에도 소액 해외송금 업무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과 6개월 만인 올 3월에는 자산 1조 원 이상 저축은행에도 소액 송금업무를 허용키로 했다. 그러면서 증권, 카드사의 해외 송금 및 수금 한도를 건당 3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늘렸다. 애초 제도 개편 때 모든 것을 풀어주고 필요한 것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하지 않고 규제 권한을 찔끔찔끔 풀면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를 완화할 때는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예측성을 높여야 기업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그때그때 골라 규제를 푸는 식으로는 관료의 재량권만 늘려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규제공화국#면세 한도#간이과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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