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5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야생동물 카페’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쿤, 제닛(사향고양잇과 동물) 같은 이색적인 야생동물들이 손님들 사이에서 뒤섞여 놀고 있었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은 캥거루과의 왈라비도 뛰어다녔다. 카페 직원은 손님들의 소지품을 동물들이 물어 삼킬 수 있으니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사물함에 보관하라고 안내했다. 사물함에는 ‘동물들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면 안 된다’, ‘라쿤이 물 수도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런 야생동물 카페가 전국에 84곳(2018년 6월 기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야생동물 카페는 식품접객업으로 분류돼 있어 야생동물 전시에 관한 사항을 환경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 10개 종 또는 50개체 이상의 동물을 전시하는 경우에만 동물원으로 등록하도록 해 놓았다.
환경부가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의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들이 야생동물과 무분별하게 접촉할 경우 감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고 생태계가 교란될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라쿤은 광견병 매개체여서 미국에서도 골칫덩어리로 꼽힌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사람 성격이 제각각이듯 일부 개체는 순할 수 있지만 야생동물인 만큼 순식간에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생동물 카페 운영자들은 환경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카페를 차리느라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환경부가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물 카페 등 전국의 동물산업 관련 종사자들이 ‘한국동물문화산업협회(KACIA)’를 꾸려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물산업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효연 KACIA 회장은 “동물의 습성에 맞춰 모래와 은신처 등을 갖추고 손 소독을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를 하면 되는데 동물 카페를 무조건 금지하겠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곳은 영업을 허가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으로 야생동물 카페 운영자들이 생존권의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잘 지키기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동물산업 종사자들의 인식에도 빈틈은 있어 보인다. 기자가 찾았던 야생동물 카페 주인은 기자에게 사료를 건네며 “한번 먹이를 줘보라. 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10여 분 뒤 카페 직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주인에게 말했다. “라쿤이 또 (나를)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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