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를 부르는 시간인데도 아이들 노랫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창문 밖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지난달 30일 찾은 강원 정선군 여량어린이집의 황량한 풍경이다. 이곳은 여량면의 유일한 보육시설인데도 원아가 5명뿐이었다. 저출산과 이농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2층짜리 어린이집 건물은 설립자인 고재하 원장(73)의 집과 같은 울타리를 쓰고 있었다. 새마을지도자였던 고 원장은 1976년 아이 맡길 곳이 없는 고향 마을을 위해 집안 대대로 농사짓던 땅에 농촌 탁아소를 열었다. 농촌 탁아소가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으로 바뀐 건 1994년이다. 당시 정부는 농어촌 보육 환경을 개선하려고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을 세우면 건축비 일부와 인건비를 지원했다. 군청 직원의 간곡한 부탁에 고 원장은 흔쾌히 땅 절반과 사재를 출연해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을 세웠다.
하지만 어린이집 정원(76명)을 채운 기간은 짧았다. 폐광과 저출산, 이농 현상이 겹치면서 1994년 4000명이 넘던 여량면 인구는 올해 2052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여량면을 관통하는 도로 신호등은 한낮에도 노랑 점멸신호만 깜박거렸다. 차량 통행과 인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어린이집 2층 교실은 3년 전부터 비어 있다. 고 원장은 “앞으로도 원아가 늘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며 씁쓸해했다. 지난해 여량면의 전체 출생아는 1명이었다. 여량어린이집은 원아 감소로 정부 지원금이 줄면서 적자를 보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은 학부모한테 돈을 걷을 수도 없어 적자는 고 원장의 사비로 메우고 있다. 그동안 월급을 정부가 정한 대로만 받아와 모아둔 돈도 별로 없다. 원장 가족이 거액의 월급을 받아 사회적 공분을 산 일부 사립유치원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고 원장이 어린이집 문을 닫지 못하는 건 어린이집을 폐원하고 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하면 모든 재산이 국고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이 열악한 농어촌 보육 환경을 개선하고자 협력한 게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이다. 정부는 적은 예산으로 공공성을 확보한 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었고, 설립자는 정부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학부모였다. 정부와 설립자, 학부모 모두 ‘윈윈’했지만 저출산 쇼크로 이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사회복지법인은 개인 재산이 아니다’라는 원칙적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국가가 아이 보육을 책임지는 무상보육을 실시하면서 농어촌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이 설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면 보육 공백을 최소화하되 폐원 시 개인 재산을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저출산 쇼크의 부담을 정부 정책을 따른 개인에게 떠넘긴다면 정책 신뢰도 역시 급격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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