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현금복지 확대에 반대하며 과도한 현금복지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 꼭 필요한 현금복지는 엄선해서 중앙정부가 일괄 실시해야 한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6일 “누가 봐도 이상한 현금복지 제도가 점점 늘고 있다”며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지난달 27일 발족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산하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 준비위원회 간사다. 복지대타협 준비위는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 서대문 양천구, 경기 수원 군포 과천시, 대전 중구, 충북 증평군, 충남 논산시, 광주 동구, 전북 전주시, 전남 담양군, 부산 부산진구, 경남 거제시, 울산 동구 등 15개 기초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가 현금복지를 남발하면 모두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모였다. 현금복지 경쟁에 반대하는 지자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현금복지 논쟁이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 “지자체장이 잘해서 돈 많은 게 아닌데…”
복지대타협위는 출범하면 최근 각 지자체가 도입한 현금복지 사업들을 전문가들이 평가하도록 할 계획이다. 사실상 현금복지 논쟁을 촉발시킨 서울 중구의 어르신공로수당도 그중 하나다.
중구는 올 2월부터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령자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공로수당으로 월 10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보건복지부는 공로수당과 기초연금 수령 대상(소득 하위 70%)이 일치하는 만큼 공로수당은 수령 대상을 더 좁히고 사용처도 제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와 중구가 끝내 협의하지 못하면 기초연금의 국고보조금을 삭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보다 더 난감한 곳은 ‘중구는 주는데 왜 우리는 안 주느냐’는 구민들 불만을 들어야 하는 다른 기초단체다. 특히 인접한 성동구는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중구와 성동구로 나뉘는 곳이 있어 곤혹스럽다.
중구처럼 자체 현금복지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대체로 재정 사정이 좋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예산 기준 중구의 재정자립도는 66.0%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66.2%)에 이어 2위다. 반면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20%대밖에 안 되는 자치구는 12곳이나 된다. 재정 상황이 좋으면 자체 사업을 할 여력도 증가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식이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지자체의 시선은 곱지 않다. 복지대타협 준비위 위원장인 염태영 수원시장은 “여유가 있는 지자체는 지역에 기업이 많거나 부동산 가격이 높아 세금이 많이 걷혀서 그런 것”이라며 “일부 지자체장은 자신이 잘해 세수가 많으니 돈을 쓸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이라고 말했다.
지리적 혜택을 본 지자체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본 지역도 있으니 복지 혜택은 일정하게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게 준비위 측 지자체장들 생각이다. 대전에서는 유일하게 준비위에 참여한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은 “현금복지 경쟁은 지자체 간, 주민 간, 지자체장 간 갈등을 유발한다”고 꼬집었다. 대전 중구는 재정자립도 14.5%로 인근 유성구(31.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대체로 복지의 대상이 되는 저소득층과 노인이 많다. 그런 곳은 섣불리 현금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부유한 지자체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 “안 주는 것보다는 낫겠지” 안이한 인식
현금복지 경쟁에 반대하는 기초단체장들이 세를 불리는 배경에는 혼자서 반대하고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수도권 기초단체 관계자는 “지자체장 중에서 현금을 쓰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로 뽑히는 지자체장은 지역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현금 지원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옆 동네는 해주는데 왜…. 다음 선거 때 보자’는 말이 들리면 무리해서라도 현금 살포에 손이 간다고 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금복지의 시작은 대체로 주민 요구가 아닌 지자체장이다. 한 지자체장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현금복지를 꺼내들고 결국 다른 지자체로 퍼진다”고 말했다.
출산장려금처럼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고 지역 간 비교하기도 쉬운 현금복지 사업일수록 경쟁적으로 확산된다. 전남 담양군은 지난해까지 첫째 자녀 40만 원, 둘째 90만 원, 셋째 140만 원이던 출산장려금을 올해 첫째 130만 원, 둘째 220만 원, 셋째 1000만 원으로 크게 올렸다. 최형식 담양군수는 복지대타협 준비위에 참여하고 있다. 현금복지 남발에 반대한다는 그조차도 막상 자신의 지역에서는 주민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증거다. 최 군수는 “전남의 다른 기초단체와 비교했을 때 담양군 출산장려금 수준은 평균 또는 평균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재정여건이 개선돼 이 정도는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장려금을 올렸다”고 밝혔다.
전남 기초단체들이 출산장려금을 올린 것은 2013년부터 6년 연속 합계출산율 전국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은 해남군의 영향이라는 게 중론이다. 해남군은 2012년부터 첫째 300만 원, 둘째 350만 원, 셋째 600만 원, 넷째 이상은 720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출산장려금이 실제 출산율 제고로 이어졌는지는 해남군조차 “꼭 그렇지 않다.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 지자체는 따라하기 쉬운 현금 지원부터 벤치마킹하게 된다.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일단 하고 보자는 판단도 현금복지 확산의 주원인이다.
강원도는 올 4월 도내 출생아에게 매달 30만 원씩 4년간 지급하는 육아기본수당 사업을 시작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지난해 지방선거 공약이다. 복지부는 정부 복지제도인 아동수당, 양육수당과 중복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지만 강원도의회는 수당 지급을 의결했다. 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만 육아기본수당에 반대했던 정유선 도의원은 “강원 인구 감소는 비혼율 증가와 다른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의 영향이 큰데 이를 당장 해결하기 힘드니 결국은 쉬운 정책을 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의원에 따르면 도의회 내부에서도 일부가 육아기본수당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다수 의원이 “어쨌든 돈을 주면 안 주는 것보다는 애 낳을 생각을 더 하지 않겠느냐”며 밀어붙였다.
○ 정부 주도 현금복지에 등골 휘는 지자체
복지대타협 준비위 계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현금복지 사업 가운데 필요한 사업은 중앙정부가 맡아서 일괄 시행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준비위 측은 앞으로 현금복지 사업은 중앙정부가 100%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금복지 비용은 모두 중앙정부가 대라는 얘기다. 그 대신 지방정부는 서비스복지에 전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계획에는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현금복지 비용을 지자체가 나눠 내온 것에 대한 불만도 녹아 있다.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아동수당 양육수당 등 국민이 보편적 복지로 인식하는 대부분 사업의 비용을 정부와 광역단체, 기초단체가 분담한다. 지자체들은 비용을 분담하면서도 생색은 정부가 내는 현금복지 사업에서 손떼고 싶은 게 사실이다.
또 기초단체는 광역단체 역시 현금복지를 하려거든 그 비용을 전담하길 원하고 있다. 경기도가 올 4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청년기본소득사업은 ‘경기도지사 이재명표’ 현금복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재원의 30%는 수원 평택 같은 기초단체가 내야 한다.
현금복지 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지자체의 재정 여건은 그만큼 나아질 수 있다. 지방분권의 한 축인 재정분권이 한결 진전되는 것이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염 수원시장을 비롯한 대표적인 지방분권론자들이 준비위를 주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금복지는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지방정부는 서비스복지에 힘쓰는 게 선진화된 모델로 평가받는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 방식이기도 하다. 중앙정부가 현금복지를 전담하면 예산 낭비가 줄어들고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거란 기대도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금복지를 중앙정부가 도맡게 된다면 정부도 사업을 철저하게 검토해 지출 계획을 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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