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안일 행정이 낳은 붉은 수돗물[현장에서/강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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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관계자들이 붉은 수돗물 사태로 식수 공급을 받지 못하는 가정에 지원할 생수를 옮기고 있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인천 서구 관계자들이 붉은 수돗물 사태로 식수 공급을 받지 못하는 가정에 지원할 생수를 옮기고 있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이건 인재입니다. 통상 10시간에 걸쳐 진행해야 하는 일을 10분 만에 밸브를 열고….”

18일 기자들과 만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날 환경부는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이 브리핑은 30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매일 마시고 쓰는 수돗물을 인천시가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는 설명회였다.

인천시는 처음부터 원칙을 어겼다. 지난달 30일, 평소 물을 끌어오던 풍납취수장이 점검으로 가동을 잠시 중단하자 인천시는 인근 수산·남동정수장에서 물을 끌어오는 상수도 수계 전환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갑자기 물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만큼 상수도관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관 내 물때가 떨어지지는 않는지 등을 점검하며 밸브를 천천히 열어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 담당자들은 단 10분 만에 밸브를 열고 유량과 유속을 두 배로 늘렸다.

그 물을 바로 받는 인천 서구 지역에선 그날 오후부터 수돗물이 붉게 변했다는 신고들이 들어왔다. 4일 뒤 영종에서, 보름 뒤인 13일부턴 강화까지 붉은 수돗물 신고가 밀려왔다. 그러나 인천시는 ‘수질은 기준치 이하’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다 사고 발생 18일이 지난 17일에야 부실한 초기 대응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현재 인천엔 135개교가 정상 급식을 중단하고 빵과 우유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시의 안이한 행정은 급하게 물의 흐름을 바꾼 데서 그치지 않았다. 흐름이 바뀐 수돗물들이 정수장에 들어갈 때 탁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높아졌고, 그 이후 탁도 측정기가 고장 나 작동을 하지 않는데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정수장에서 계속 부유물질들이 든 수돗물이 공급되며 사태가 장기화되고 피해 지역이 넓어지는데도 못 막아낸 두 번째 이유다. 환경부가 꾸린 원인조사반이 13일 현장에 들어가서야 탁도 측정기가 고장 난 것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부유물질들이 알루미늄과 망간 등의 ‘물때’라고 결론 내렸다. 음수 기준치보다는 낮지만 아직 빨갛게 나오는 부분이 있으니 생활용수 정도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또 29일까진 단계적으로 정수지와 관을 청소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마련해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백서를 만들어 향후 비슷한 일이 생길 경우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날 브리핑 직후 “참담하고 아프다”며 “인천시 시정 책임자로서 이번 상수도 관련 여러 잘못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공개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심정이 발표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먹는 물을 우습게 본 대가로 얻은 불신과 상처는 29일 이후 맑은 물이 나와도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kej09@donga.com
#인천 붉은 수돗물#물때#풍납취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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