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행업체 직원 손모 씨(32·여)는 최근 택시 뒷자리에 앉는 순간 ‘아차’ 싶었다. 흡연실 못잖은 담배 찌든 내가 독한 방향제 향기와 뒤섞여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운전사가 택시 안에서 여러 차례 담배를 피운 게 분명했다. 급기야 멀미까지 났다. 손 씨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곤욕을 치렀다. 고객 미팅을 위해 드라이클리닝을 한 정장엔 담배 냄새가 잔뜩 배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손 씨처럼 담배 찌든 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윤진하 연세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2017년 국내 성인 3000명을 설문해 보니 택시에서 담배 냄새로 불쾌감을 느꼈다는 응답이 84.8%였다.
택시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승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 호흡기 건강까지 위협한다. 차량 시트나 먼지에 흡착됐던 니코틴이 승객의 호흡기로 들어가 ‘3차 흡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흡착된 유해물질 자체도 해롭지만 배기가스에 들어있는 아질산과 반응해 새로운 발암물질인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 등까지 생성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운전사는 흔히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내뿜는다’며 차 안에 남은 냄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창문을 연 채 담배를 피워도 차 안 초미세먼지(PM2.5)의 m³당 농도는 최고 70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높아진 뒤 15분간 평균 82.4μg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공기 질 ‘매우 나쁨’ 기준(75μg)보다 높다.
차량 내에 한번 흡착된 유해물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차량 107대를 나눠서 분석해 보니 비흡연자 차량의 대시보드에서 검출된 검체 1g에 평균 니코틴 농도는 0.06μg이었지만 흡연자의 것은 8.61μg이었다. 12개월간 차량 내 흡연을 완전히 금한 뒤 추적 조사를 해봤지만 니코틴 농도는 5.09μg으로 절반도 줄어들지 않아 여전히 비흡연자 차량의 84배 수준이었다.
현행 여객자동차법에 택시 내부는 담배를 피워선 안 되는 공간으로 명기돼 있다. 이를 어기면 운전사든 승객이든 과태료 10만 원을 물린다. 하지만 실제 금연구역 단속은 여객자동차법이 아닌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이뤄진다. 국민건강증진법엔 유상 운송수단 중에서도 ‘16인승 이상’만 금연구역으로 분류돼 있다. 16인승 미만인 택시는 흡연 단속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단속 대상을 왜 이처럼 16인승 이상으로 제한했는지는 정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최근 3년간 흡연 과태료가 부과된 8만756건 중 택시에서 단속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청소년을 비롯한 승객의 3차 흡연 피해를 막으려면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택시 내부도 금연구역으로 명기하고, 택시를 호출할 때 운전사의 흡연 여부를 표시해 승객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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