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눈물[현장에서/김소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일 03시 00분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씨랜드 참사 추모비 앞에 모인 유족들. 송파구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씨랜드 참사 추모비 앞에 모인 유족들. 송파구 제공
김소영 사회부 기자
김소영 사회부 기자
“우리 형민이 먹을 거 가져왔다. 애들이랑 전부 다 나눠먹게.”

고 이형민 군의 외할머니 안순이 씨(81)가 잘 익은 참외와 바나나, 떡을 형민 군의 영정 앞에 놓으며 말했다. 외손자의 영정을 쓰다듬던 안 씨는 뒤돌아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그러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손자 앞에 섰다. 안 씨는 빳빳한 1만 원짜리 지폐를 영정 옆에 올려둔 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형민 군은 20년 전 ‘씨랜드 참사’로 희생된 19명의 유치원생 중 한 명이다. 지난달 30일 씨랜드 참사 20주기 추모식이 서울 송파구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서 열렸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모두 23명이 숨졌다. 당시 숨진 19명 중 18명의 어린이가 송파구 소망유치원에 다니는 5, 6세 아이들이었다. 추모비에 놓인 사진 속 아이들은 별 모양 왕관을 쓴 채 웃고 있었다. 국화를 들고 덤덤하게 헌화 순서를 기다리던 유족들은 사진 속 아이들과 눈을 마주친 뒤에는 모두 흐느꼈다.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은 가족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들을 떠나보낸 한 어머니는 20년 동안 우울증 약에 의지하고 있다. 형민 군 아버지 이동영 씨(57)는 아들의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한 뒤 지금까지 밤에 혼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움도 그대로다. 고 김세라 양 아버지 이상학 씨(54)는 딸이 좋아했던 인형 500여 개를 사서 방에 가득 채워뒀다고 한다. 참사 이후 아예 한국을 떠난 가족도 있다. 국가대표 하키선수였던 김순덕 씨(53)는 아들 김도현 군을 잃고 “이런 나라에서 도현이의 동생을 키울 수 없다”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한 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유족들은 사고 발생 다음 해 1억5000만 원의 기금을 마련해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웠다. 대표는 쌍둥이 자매를 떠나보낸 고석 씨(56)가 맡았다. 고 씨는 송파안전체험교육관을 세워 체험형 안전교육에 힘쓰고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극적인 일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유족들의 바람과 달리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유족들은 “매번 사고가 발생하면 머리 숙여 사과만 할 뿐 예방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추모식을 찾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실종자인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어머니 이영문 씨(70)는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실종자도 얼른 찾아야 할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참사 이후 20년의 시간이 흘러 당시 30대였던 엄마, 아빠들은 50대 중년이 됐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영원히 유치원생이다. 추모식을 찾은 유족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희생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입니다.” 아이들이 남긴 숙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
#씨랜드 참사#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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