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대부분 니코틴 함량 1% 미만 담배밖에 없는데 저희 제품은 훨씬 독해요. 니코틴이 3% 들었거든요.”
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한국국제전자담배박람회장. 기자가 중국 A전자담배업체 부스에 가자 담당자가 일회용 전자담배를 권하며 이같이 말했다. 화학물질관리법상 액상에 니코틴이 1% 이상 포함되면 유해 화학물질로 분류된다. 2%가 넘으면 환경부로부터 유해 화학물질 영업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당 업체가 환경부 허가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7일까지 사흘간 킨텍스에서 열린 제2회 한국국제전자담배박람회장은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정책을 무색하게 만든 현장이었다.
주최 측인 한국전자담배사업협회와 킨텍스는 ‘니코틴이 든 제품을 시연하거나 판매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5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와 함께 돌아본 박람회장에서는 니코틴 함유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상당수 보였다.
액상형 니코틴 용기를 판매하는 북미 B업체 부스에는 ‘니코틴 함량 0mg’이라고 적힌 제품 상자가 전시돼 있었다. 기자가 “정말 니코틴이 없느냐”고 묻자 담당자가 “상자에만 그럴 뿐 시연 제품에는 니코틴이 들어 있다”고 ‘고백했다’. 해당 제품의 실제 니코틴 함량은 6%였다. 중국 C업체 담당자는 “이번에 갖고 온 제품에는 전부 니코틴이 들었다”며 “관람객들은 니코틴 함유 제품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공재형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주임은 “영세업체나 해외 업체들이 많아 박람회만을 위해 무(無)니코틴 제품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의 판촉 경쟁도 치열했다. 소셜미디어에 홍보글을 올리면 전자담배나 액상 니코틴을 무료로 주는 업체도 있었다. 일본 성인물(AV) 여배우들의 팬 사인회 같은 호객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람회 개막 세 시간쯤 지나자 금연 구역인 킨텍스 내부는 시연용 담배에서 나오는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흡연실이 두 군데 있었으나 환풍구로 나온 연기는 실내로 유입됐다. 주최 측은 연무량(전자담배가 뿜어내는 증기량) 대결 행사를 여는 등 흡연을 부추겼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형 컨벤션센터에서 담배 판매 및 광고 행사가 진행됐지만 한국전자담배사업협회 측은 “대다수 제품이 ‘유사 담배’라 금연구역 규정 등 관련법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담배는 연초 잎을 원료로 한 제품으로 한정된다. 유사 담배까지 담배로 인정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단속 당국도 박람회에 나온 제품의 니코틴 함유 여부, 니코틴 종류 등을 현장에서 파악할 방법이 없어 판매 제재 같은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업체들의 제품 샘플을 무작위로 수거했다”며 “성분을 검사한 뒤 문제가 발견되면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