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무연고 묘비 관리나서야[현장에서/한성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0일 03시 00분


새똥이 말라붙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의 묘비.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새똥이 말라붙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의 묘비.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한성희 사회부 기자
한성희 사회부 기자
“옆 묘비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새똥이 쌓여서….”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물티슈를 손에 든 홍모 씨(47)는 조금 전까지 하얀 새똥이 쌓여 있던 묘비 쪽을 쳐다보며 “보기 안쓰러워 제가 닦아드렸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홍 씨는 1년에 서너 번씩 서울현충원에 온다고 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큰아버지가 이곳에 묻혀 있다. 올 때마다 물티슈를 챙겨와 큰아버지 묘비를 정성스레 닦는 홍 씨는 찾는 이가 없어 보이는 옆 묘비에 눌러 붙은 새똥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서울현충원 묘역 곳곳에서는 새똥이 눌러 붙은 묘비가 꽤 많이 보였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새똥이 눌러 붙은 부위가 부식된 묘비도 있었다. 묘역 곳곳에는 묘비 앞면에 음각으로 새긴 전사자의 이름과 계급이 흐릿해져 알아보기 힘든 묘비도 많았다. 음각 부분이 오랜 시간 비바람에 노출돼 깎이면서 알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본보가 현충일인 지난달 6일 현충원 묘비의 흐릿해진 음각 실태를 보도한 이후 한 달 이상 지났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훼손된 묘비를 교체하거나 음각을 새로 파는 작업을 우리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 현충원 관계자는 “‘왜 허락없이 묘에 손을 댔느냐’며 유족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라며 묘비를 교체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충원은 유족이 제적등본을 제출하고 따로 신청할 때에만 묘비를 보수해주거나 교체해 준다. 현충원 관계자는 “심하게 변색되고 깨진 묘비에는 ‘유족이 방문한다면 민원실을 찾아달라’고 스티커를 붙여둔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찾는 유족이 없는 ‘무연고’ 묘비들이다. 현충원 묘역에 안장된 전사자 중 상당수는 20대 초중반에 자식이 없는 상태로 순직해 생존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무연고 묘비에는 아무리 스티커를 붙여놓아도 묘비 보수나 교체를 요구하는 유족이 나타날 리 없다. 현충원 측은 전체 5만4500여 개 묘비 중 3분의 1가량이 무연고 묘비일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히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른다.

현충원과 상급기관인 국방부는 “시스템상 전사자의 유족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 연고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충원이 무연고로 추정되는 묘비에 한정해 제적등본 열람 권한을 지닌 시·군·구·읍·면장에게 열람을 신청하면 된다. 제적등본은 전산화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9일 ‘현충원이 전사자의 연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지’를 묻는 본보 질의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무상 필요에 따라 문서로 시·군·구·읍·면에 신청하면 제적등본을 볼 수 있다”며 “현충원이 제적등본을 열람하는 게 가능할 걸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두고 찾아올 이 없는 무연고 묘비를 방치하는 건 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한성희 사회부 기자 chef@donga.com
#현충원#무연고 묘비#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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