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수원지법의 한 재판부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이혼한 여성 D 씨가 보낸 편지였다. 그는 “이혼 후 멋대로 데려간 외동딸을 돌려 달라”며 전남편을 고소했었다. 전남편은 딸을 납치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D 씨가 선처 편지를 보낸 것이다. D 씨는 편지에서 “(전남편이 구속돼) 딸이 고아로 사는 건 원치 않는다”고 썼다.
D 씨가 재판부에 편지를 보낸 건 딸을 돌려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2013년 D 씨와 이혼한 전남편은 이듬해 5세 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버렸다. 그러곤 연락을 끊었다. 딸 양육권은 D 씨에게 있었다. D 씨는 전남편을 고소하기에 앞서 딸을 돌려달라는 유아 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 소송에서 “딸을 돌려주라”며 D 씨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과정에서 전남편이 딸을 최면센터로 데려가 “엄마에게 학대당했지”라고 유도질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법원 직원이 판결문을 들고 딸을 데리러 전남편의 집으로 찾아간 날이었다. 7세가 된 딸은 서럽게 울었다. “내가 엄마한테 가면 아빠가 죽는대요….” 딸이 울며 버티는 한 판결을 집행할 수 없었다. 대법원 예규는 의사 능력이 있는 유아가 거부할 경우에는 유아 인도를 집행할 수 없도록 정해 놓았다. 결국 D 씨는 전남편을 납치 혐의로 고소했다. 이때부터 딸은 D 씨에게 적대감을 보였다고 한다. 법원은 올해 5월 전남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전남편과 산다.
D 씨처럼 이혼한 부부 중 양육권자가 자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이기더라도 판결을 집행할 때 자녀가 “안 간다”는 한마디만 하면 판결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양육권을 가진 쪽이 아이를 데려간 전 배우자를 고소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양육권이 없는 부모와 함께 살겠다고 말하는 이상 자녀 납치 혐의로 고소를 당하더라도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로 선처를 받는다. 본보가 2017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자녀 납치 혐의로 기소된 부모 12명의 판결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부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로 선처를 받았다.
D 씨처럼 피해를 보는 사례를 막을 방법이 있다. 이혼소송 때 판사가 전문가와 함께 자녀의 의사를 여러 차례 확인하고, 판결이 선고되면 강제 집행을 하면 된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법안은 1년 4개월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 갓난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여자에게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울면서 아이를 포기했다. 왕은 이 여자에게 아이를 건넸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탈무드 얘기와는 정반대다. ‘진짜 부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오늘도 아이를 뺏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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