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어려울 때 더 필요하다는 히로시마의 목소리[현장에서/이윤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8일 03시 00분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학생들.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학생들.
이윤태 국제부 기자
이윤태 국제부 기자
6일 오전 8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투하 74주년을 맞아 희생자 위령식이 열렸다. 일본의 미래 세대를 대표해 연단에 오른 히로시마의 남녀 초등학생 둘은 핵 없는 세계와 평화로운 미래를 얘기했다. 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숨쉬기 힘들 정도로 습도가 높았지만 공원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였다.

4∼7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한일성신학생통신사’ 행사에 참여한 기자도 이날 현장을 찾았다. 이는 한일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대학생 교류 모임이다. 이날 연단에 오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매년 희생자 위령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위령식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2일 한국을 안보 우방국에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후 4일 만에 처음 공개석상에서 등장한 그가 왜 뜬금없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언급했을까. 원폭 희생자 위령식이라는 장소와 상황에 걸맞지 않고,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해자의 큰 축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생뚱맞은 얘기였다.

동행한 일본 대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히로시마경제대 경제학과 4학년 아베 가나코 씨(22·여)는 “오늘은 일본인들로선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를 기도하고 싶은 날이다.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굳이 오늘, 히로시마에서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와세다대 정치학과 대학원생인 소부에 이쓰키 씨(23·여)는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부과한 한국 대법원 판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먼저 신뢰를 깼다는 총리의 주장은 맞지 않다. 총리가 지지층을 의식해 근거 없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4학년 요시다 가오루 씨(23)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 전에 적극 중재에 나섰다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학생들은 의견 대립만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일수록 양국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요시다 씨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만나서 대화를 했다. 한일 정상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오랜 교류의 역사를 지닌 두 나라가 앞으로도 친한 이웃으로 지내야 한다”고 했다. 대학생들도 느끼는 것을 기성 정치인들이 따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 돼 버렸다. 서로의 다름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히로시마에서 이윤태 국제부 기자 oldsport@donga.com
#히로시마#한일성신학생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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