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창신동 A마트. ‘끽’ 하고 열린 유리문이 ‘쾅’ 닫히자 정모 사장(6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평(66m²) 남짓 되는 마트 계산대에 앉아 있던 아내 안모 씨(61)가 “20만 원 정도 팔았어”라고 답했다. 아내가 조그만 부엌에서 두부찌개를 끓였다. 낮 12시부터 부부는 파란색 간이용 탁자 위에 음식을 놓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했다. 부부가 하루 중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 유일한 시간이다.
“시장은 내일 갈 거지? 저녁 챙겨먹어. 난 간다.”
식기를 정리하자 오후 1시가 됐고, 아내가 가게 문을 나섰다.
“얼른 가 쉬어.” 남편의 말을 뒤로한 채 안 씨는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10시간 후인 밤 11시 30분에 그는 또 마트에 나와야 한다. 포도, 수박이 진열된 좌판 뒤 마트 유리창엔 ‘24시간 운영’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 24시간 영업의 늪
정 사장이 이곳에 A마트를 차린 것은 2010년 7월이었다. 20년 동안 밭떼기(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는 일) 거래를 했던 그는 2009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몽땅 잃다시피 했다. 그 후 동생들 도움으로 시작한 게 이 점포다.
“야근 책임지고 할 수 있는데 저 알바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중국인 여대생이 찾아와 야간 근무를 자처했다. 종일 영업할 생각이 없었지만 정 사장은 학생 부탁으로 24시간 영업을 결심했다.
“밤에도 돌아가는 인근 봉제공장도 많고 좌판의 상품을 들였다 내놨다 하기도 힘드니 밤새 영업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2명의 아르바이트생과 정 사장이 3교대로 번갈아가며 24시간 운영을 했다. 장사는 잘됐다. 하루 매출이 300만∼350만 원을 오갔다. 명절이면 선물세트와 과일이 잘 팔려 하루 매출 1200만 원을 찍은 날도 있었다. 정 사장은 “아들 장가갈 때 전셋집 하나는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낙후된 동네를 떠나는 주민이 늘어난 데다 동대문시장 침체 여파로 주요 고객이었던 봉제공장 관계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게다가 3년 전 80m 떨어진 곳에 편의점이 생기자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가 편의점보다 소주 가격이 더 싼 데도 젊은 사람들은 다 거기로 가요.”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때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7월 자영업자 567만5000명 중 415만5000명이 정 사장처럼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다.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혼자 일하거나 혹은 가족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13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 동안 점포에서 물건을 사간 사람은 총 23명. 소주 1병, 아이스크림 1개 등 소액 구매가 많아 판매액은 6만4000원 정도에 그쳤다. 이렇게 부부가 꼬박 24시간 일해 올리는 매출은 월 3000만 원 정도다. 제품 원가와 가게 월세, 집세, 전기료 등을 뺀 순이익은 불과 250만∼300만 원이다.
“이제 하루 매출은 100만 원을 간신히 넘을 뿐이에요. 하루 문 닫고 쉴 수도 있지만 이젠 닫으면 손해예요. 완전 창살 없는 감옥이라니까.” 정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 부부에게 없는 3가지… 휴가, 건강, 노후 준비
20일 점심에도 부부는 교대를 준비했다. 매일 가게에 매달려 있는 부부의 주당 근로시간이 80시간을 훌쩍 넘는다. 부부는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다.
정 사장은 얼마 전 안 씨가 “아유, 내가 왜 일요일도 없는 사람한테 같이 살자고 했는지…”라며 한숨을 쉬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정 사장은 “젊을 적엔 휴가도 갔지만 이젠 사람 둘 형편도 못 되고 기름값 아까워서 놀러가지도 못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의 유일한 취미는 유튜브 시청이다. 손님이 뜸할 때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정 사장은 “산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안 간 지 6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이걸 그만둘 수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정 사장은 한쪽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다. 서른한 살 때 의류 재단 일을 하다 당한 절단 사고 탓이다. 손이 불편하니 막노동 일자리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밤낮이 바뀐 안 씨도 지난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대상포진을 앓았다. 치료비로 하루 매출보다 많은 150만 원을 썼다.
최근엔 가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새 건물주로부터 마트를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보증금 1000만 원을 줄 테니 나가 달라”고 했지만 부부는 “시설비용으로 8000만 원이 들었다. 나갈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으로 한 달 7만8000원을 내는 게 부부의 유일한 노후 대비다.
“왔어?”
이날도 밤 11시 30분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지춤을 추켜올린 정 사장은 가게 안을 쓱 둘러보고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고 말했다. 밤 10시에 잠에서 깼다는 안 씨는 그제야 저녁을 먹었다. 어두운 골목길로 향하는 정 사장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보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