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와 지방자치단체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고로 브리더’ 논란이 일단락됐다. 3일 환경부가 민관 협의체 활동 결과를 종합 발표하면서 브리더 개방 자체는 합법화하되 배출물질 저감 방법을 찾기로 했다.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용광로)의 브리더는 고로 내 압력과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일종의 비상밸브다. 지자체들은 이 비상밸브를 열면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이유로 고로 정비 중의 브리더 개방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이를 어긴 죄로 현대제철과 포스코에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리거나 예고했다.
5월 중순부터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설마’ 싶었다. 4, 5일 고로의 불을 끄면 내부의 쇳물이 모두 굳어 버린다. 쇳물이 굳으면서 엉겨 붙으면 그 고로는 아예 못쓰게 될 수도 있는데 과연 지자체가 조업정지 처분을 강행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충남도는 현대제철에 ‘사망 선고’와도 같은 조업정지 처분을 실제로 내렸다.
황당했던 건 기업 하나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런 중차대한 행정 결정의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고 아마추어 같았다는 점이다. 브리더를 열면 어떤 오염물질이 얼마나 배출되느냐는 물음에 한 지자체 관계자는 “대기오염물질의 양이나 오염도가 행정 처분의 근거는 아니다”라고 했다. “브리더 개방 행위 자체가 문제이니 단속했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매년 수십조 원의 매출을 창출하는 한국 대표 기업에 극약처방을 내리면서 오염물질의 배출량은 상관이 없다니 이 문제를 가정집 보일러 한 개 끄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조업정지가 타당한지 찬반 논란이 확산되자 해법을 찾기 위한 민관 협의체가 꾸려졌다. 두 달 넘게 자료를 모으고 해외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협의체가 내놓은 결론은 논란이 벌어진 직후 전문가들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고로 기술로는 브리더 개방 이외의 확실한 기술적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환경당국과 기업이 마주 앉아 진지하게 논의했으면 어땠을까. 공인된 고로 전문가를 모셔놓고 왜 브리더를 여는지, 대안은 있는지, 조업정지의 파급효과는 어떤지를 얘기해봤어도 이런 소모적인 소동을 벌였을까.
안타깝게도 현대제철에 조업정지 처분을 확정한 충남도는 이번 발표에도 아랑곳없이 조업정지 처분을 철회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에는 스스로 행정처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 행정처분의 권위를 감안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애당초 섣부른 판단 탓에 또 다른 소모전을 치르는 게 아쉬울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