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5세 남짓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꼬마가 주문한 음료를 건네는 직원에게 물었다. 엄마가 받아든 접시에는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 두 잔과 플라스틱 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아이의 돌발 질문에 카페 직원과 엄마가 동시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대답이 없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나 숲에 버려지면 물고기나 새들이 먹이인 줄 알고 먹을 수 있어요.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걸 썼으면 좋겠어요.”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이라고 하기엔 또박또박 논리정연한 말들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일회용품이 동물을 해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불편’ 속에 살고 있다.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으면 반드시 매장 밖으로 나가야 하고, 일부 매장에선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로 만든 빨대를 쓴다. 4월부턴 일정 규모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쇼핑한 물건을 담아가던 종이상자 사용을 금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혜택(?)들을 빼앗기면서 일부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반강제적 환경사랑’이 조금씩 효과를 내는 것 같다. 딱 1년 전인 2018년 9월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대신 친환경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그전까지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해 사용하는 플라스틱 빨대의 개수는 1억8000만여 개로 월평균 1500만 개에 달했다. 1년 만에 그 많던 ‘초록색 플라스틱 빨대’가 자취를 감췄다. 종이로 만든 빨대는 사용량이 월 750만 개로 플라스틱 빨대 소비량과 비교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텀블러 사용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종이 빨대 역시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빨대 자체를 쓰지 않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회용 포장재를 재사용이 가능한 친환경 박스로 바꾸고 있는 배송업계에서도 소비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고 있다. 온라인 식품업체 헬로네이처에 따르면 새벽 배송 전체 주문자 가운데 재사용이 가능한 섬유로 제작된 용기로 배송을 신청한 고객은 6월 25% 수준에서 이달 56%까지 뛰었다. 시나브로 친환경 생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페 직원에게 잔소리(?)를 했던 꼬마에게 엄마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저 누나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내가 알려준 거지”라며 웃었다.
어른들의 작은 불편이 아이들에겐 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더 많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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