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씨(36)는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서평집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6개월 동안 매일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작가소개에 맞춤한 내용이다.
최근 용산구 신흥로의 한 카페에 들어섰을 때 남궁인 씨는 노트북을 켜고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최근 작업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저께 밤 당직을 섰을 때 자살기도한 사람만 6명 왔다. 농약 마신 사람, 추락한 사람, 수면제 과다 복용한 사람…”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3년 전 출간한 첫 책 ‘만약은 없다’도 수면제를 과량으로 털어 넣어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울증 치료를 받아온 그 50대 남성 환자는 의식을 찾은 뒤 의사에게 “선생님 덕분에 불편한 것도 없이 잘 일어났습니다”라면서 “가족이 걱정했을 텐데 얼른 퇴원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네요”라고 차분하게 말한다. 환자는 의사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인사를 하면서 병원을 나간다. 두 시간 뒤, 119 카트가 도착한다. 아파트 7층에서 추락해 시신이 돼버린 사내, 의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던 사람이다.
“레지던트 때 응급실에 서게 됐습니다. 환자가 밀려오는데 저 혼자 다 맡아야 했어요. 응급의학과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했던 때였거든요. 머리로는 다 안다지만 손이 실수하면 한순간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최선인 걸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게 아닐까, 하루에 하나씩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어요.” ‘만약은 없다’와 후속작 ‘지독한 하루’에서 묘사된 응급실 상황은 그랬다. ‘전쟁 같다’는 말은 상투적이다. 그의 글을 읽던 어머니는 “아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에 몸이 떨린다”며 책을 덮었다고 했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 남궁인 씨는 휴식시간이면 시를 썼다. 예과 때 문학 동아리에서 습작을 하면서 시인을 꿈꿨던 그였다. “그날그날의 일들을 시의 형식으로 쓴 거죠. 감히 시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웃음).”글을 쓴다는 건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삶과 죽음이 분초로 갈리는 응급실에서 기력을 다하느라 쉬기도 바쁜 때에 그는 또 다른 기력을 들여야 하는 글을 썼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였다. 이 간략한 답변은 ‘만약은 없다’를 넘기면 금세 헤아릴 수 있다. 그의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사지(死地)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던 중국인 사내가 주방가위에 찔려 피를 뿜으며 실려 오고 20대 여성이 술집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날아든 칼을 맞고 티셔츠에 피칠갑을 한 채로 들어오는 곳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망선고를 하면서 그는 죽음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페이스북) 포스팅이 새벽 3시, 4시에요. 제가 겪은 시간을 붙들기 위해선 집에 오자마자 써야 했거든요.”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이 유행했을 때 청소년기를 보낸 그이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텍스트로만 소통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쌓였다. 그때 인연을 맺었던 PC통신 친구들과 지금도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얘기를 나눈단다. 무슨 직업을 갖든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막연히 회사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는 극적으로 잘 본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앞에 두고 어머니의 권유를 받았다. “의대만 가면 ‘토지’를 쓰든 ‘태백산맥’을 쓰든 ‘죄와 벌’을 쓰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었다. 남궁인 씨는 “작가가 된 건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게 익숙한 젊은이답게 그는 새벽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지인들만 보고 댓글을 달던 그의 게시글이 확 번진 것은 2013년 5월이었다. ‘우리 대학병원에는 몇 년 전부터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의료계의 현실을 짚은 글이었다. 그가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다른 글들도 퍼 날랐고 그는 ‘페북 스타’가 됐다. 5만여 부를 찍은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가 나오게 된 계기였다.
남궁인 씨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7만여 명에 이른다. ‘의사들이 내는 책은 건강서적’이라는 편견을 깨고 그는 매회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에세이를 쓴다. 그의 글을 끝까지 읽도록 붙잡는 것은 독자를 빳빳하게 긴장시키는 응급실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가까이 온 죽음에 지지 않도록 맞서야 하는 환자의 분투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아 망연해 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그리고 온 힘을 다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맡은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의사의 슬픔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응급실 현장에 대한 묘사 가운데 독자의 가슴을 두드리는 감성은 청소년 시절부터 그를 매혹시키고 또 단련시킨 ‘문학적 글쓰기 훈련’에 빚졌다고 그는 말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글이든 ‘문학성’이 입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의사와 작가는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보인다. 두 직업을 함께 하는 남궁인 씨에게 닮은 점을 묻자 그는 “모두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움직이고자 하지만, 의학은 매뉴얼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닐까. 그는 “의학은 과학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의학 논문을 인용했다. “복통 환자 4만 명을 조사한 미국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복통환자에게는 직장수지검사(의사가 손가락을 직접 항문으로 넣어 조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검사)를 하는 게 매뉴얼인데, 이 검사가 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는 알아보는 게 논문 내용이었어요. 도움이 됐다고 답한 환자는 4000명 중 수십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부분은 도움이 안 됐다거나 답변 자체를 거부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어요. 이런 (작은) 수치의 환자들이 도움을 받도록 하기 위해 직장수지 검사를 해야 하는지 질문을 제기하고 논문을 읽는 사람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내용이었어요.” 숫자라는 논거가 있긴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그는 그래서 의학 논문은 인문적 논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자신 작가이면서 동시에 의사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글을 써가면서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남궁인 씨가 생각하기에 글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도구다. 글의 유용함은 이런 개인적 의미 뿐 아니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만이 집단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쓰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펜이 칼보다 강한 시대”라고 남궁인 씨가 믿는 이유다.
●남궁인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
① 쉬지 않고 많이 쓴다=“저는 개미 약으로 개미 잡은 얘기, 위내시경 받은 얘기 등 온갖 이야기들을 씁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기록들이 쌓이면 자신만의 글쓰기 역사가 됩니다. 꾸준히 놓지 않고 쓰세요.”
② 독자에게 보이기 위해서 쓴다=“SNS가 없었다면 글을 못 썼을 겁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봐준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습니다. 실제로 지인들의 반응도 있었고요. 제 글을 보게 될 사람들을 의식하니 더 공들여 쓰게 됐습니다. SNS가 글쓰기를 연습하는 가장 좋은 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③ ‘애정하는’ 작가 3, 4명을 정하고 깊이 좋아한다=“저는 소설가 김훈 한강 김연수 씨를 좋아합니다. 제가 처음 한 일은 그들을 따라 쓴 것이었습니다. 극도로 건조하면서도 극도로 감정적인 김훈, 묵직한 밀도여서 몇 줄만 따라 읽어도 눈물이 나는 한강, 지극히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김연수의 글쓰기… 그들을 따라 쓰면서 그들과는 조금씩 다른 저만의 문체를 서서히 갖추게 됐습니다. 어떤 작가를 깊이 좋아하는 게 글쓰기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책을 많이 보는 건 필수적인데요, 그 중에서도 조금 어렵다 싶은 책을 읽는 게 저한테는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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