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장비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힌 7월에 정작 일본 내 KOTRA 책임자들은 휴가로 상당 기간 자리를 비운 것으로 나타났다. 9일 KOTRA가 자유한국당 곽대훈 의원에게 낸 자료에 따르면 도쿄무역관장 겸 일본지역본부장은 7월 한 달간 13.5일 출근했다. 해당 본부장은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발표한 다음 날인 7월 2일부터 나흘간 연차를 냈다. 그는 도쿄에서 한일 실무자회의(7월 12일)가 열린 뒤 회의의 성격과 내용을 놓고 양국 간 논쟁이 한창이던 16∼19일에도 연차를 냈다.
관장 부재 시 대신할 도쿄 부관장도 자주 자리를 비웠다. 일본 수출 규제가 발표된 7월 1일에는 반반차(2시간짜리 휴가)를 냈고 12일에도 연차를 내 주말과 바다의 날 공휴일까지 나흘 연속 쉬었다.
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해 양국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8월 22일 무렵에도 무역관장들이 대거 자리를 비웠다. 일본본부장은 8월 22일과 23일에 연차를 썼고 도쿄 부관장은 22일 반차를 냈다. 나고야무역관장은 금요일인 23일 반차를 냈다. 오사카무역관장은 22일 반반차와 반차를 낸 뒤 23일에 연차를 냈다.
당시 KOTRA의 상급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휴일을 가리지 않고 회의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부 장관 등은 줄줄이 여름휴가를 반납했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 공백이 있었던 셈이다. 곽대훈 의원은 “국내 산업계가 큰 타격을 입은 시기에 정작 일본 주재 무역관들은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지적했다. 일본 무역관장 공백에 대해 KOTRA 관계자는 “일본본부장은 비자 연장과 여름휴가 등의 사유로 연차를 썼다”고 전했다.
휴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대책을 세우려면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역 최일선에 있는 KOTRA가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만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정부 대책은 ‘속 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산업부는 초기에 현지 기류를 파악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KOTRA는 자신들의 존립 이유와 관련해 ‘고객과 국가의 무역투자 진흥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홈페이지에 명시하고 있다. 수출 규제로 불확실성이 최고조였던 때 국내 기업들은 KOTRA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무역관장들의 공백 때문에 KOTRA가 공언한 ‘무한 책임’이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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