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19)에서 열린 ‘항공우주전문가 포럼’에서 만난 전문가는 “업계가 현실에 맞는 정책과 제도 개선을 주장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항공우주산업은 재료와 소재,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필요해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와 고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분야다. 세계 항공우주산업 시장 규모도 2016년 연간 약 380조 원에서 2040년에는 약 3000조 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지난해 ‘우주산업 전략’을 수립하면서 민간이 주도하는 다목적 실용 위성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업계 사람들은 “정부 로드맵을 뒷받침하는 각종 규정과 제도가 낡아서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간 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 사업에서 제때 개발을 완료하지 못하면 내야 하는 ‘지체상금’이 계약금의 최대 30%에 달해 방위산업(10%) 분야보다도 높다는 점이다. 우주산업은 ‘우주’라는 특성상 예측하지 못한 일이 수없이 발생할 수 있다. 설계를 변경하거나 추가적인 실험 및 검증도 필요하다. 당연히 당초보다 비용이 늘 수 있지만 보전받기도 힘들고 자칫 벌금까지 물어야 하니 억울할 수 있다.
방효충 KAIST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현행법상 추가 비용이 들어도 인건비와 간접 경비, 인력 및 설비 유지를 위한 적정 이윤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 성장산업이라고 뛰어들었지만 사실상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아 우주산업이 발전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우주산업에 앞선 국가들은 기업투자의 불확실성을 인정해주고 보상한다.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와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 오리진’ 등 민간 우주기업들이 경쟁하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정부가 발주한 사업에 대해 민간 기업이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설비 및 인력 운영비를 별도 지원한다. 개발 단계에서 비용이 추가 발생하면 계획보다 2배까지도 사업비를 늘려준다. 독일도 부과세 등을 면제해주고, 일본도 매년 20% 이상 우주산업 예산을 늘리면서 이 분야 기업의 존속을 위해 정부가 일정 물량을 보장한다. 리스크가 큰 미래 성장산업에 기업이 뛰어들면 국가가 투자의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관계가 구축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열린 ‘ADEX 2017’ 축사에서 “강하고 독자적인 항공우주산업의 역량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각종 규정을 현실에 맞게 손보고 기업 투자의 불확실성을 정부가 줄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비전 제시는 공염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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