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마스터’ 된 현주엽의 ‘무색’ 농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1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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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먹성과 집요한 꾀로 선수들을 압박하는 ‘갑(甲)질’ 감독 캐릭터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주춤해진 농구에 대한 관심을 지핀 ‘레전드’ 현주엽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44). 시즌 개막 경기 직전인 1일과 2일 창원에서 만나 이틀 동안 세 끼나 다름없는 두 끼를 함께 먹은 현 감독에게 원없이 ‘아무말대잔치’하듯 농구 얘기를 묻고 들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촬영을 하고 “이제 농구 얘기만 하고 싶다”는 현 감독. 자연스럽게 감독 3년 차를 맞이하는 심정과 새 시즌 준비와 고민, 그의 농구 인생으로 화제를 돌렸다.

“특대(大) 짜리 맞죠?”

식당에서 대(大)자 메뉴를 주문하고도 식당 사장님 앞에서 더 큰 사이즈 메뉴가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는 현 감독. 정작 시즌을 목전에 두고 먹는 양이 줄었다. 알고 보니 평소에도 아침은 생략, 약속이 없으면 점심도 거른다고 한다. 음식 앞에서 진지한 ‘현주엽’이 너무 낯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또 다른 ‘현주엽’ 감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 감독과 나눈 솔직한 얘기를 개막전 직후 소개하고 싶었지만 팀의 5연패 소식에 보름 가까이 보류했다. 연패 분위기에서 현 감독의 생각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였다. 다행히 16일과 19일 연패를 끊고 2연승을 하면서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 ‘현주엽 농구’는 색깔이 없다?

시즌을 앞두고 팀의 대들보였던 김종규가 DB로 이적하고 정희재, 김동량 등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감독 입장에선 조성민, 강병현 등 고참 선수와 가드 김시래를 중심으로 완전히 팀 전력을 원점에서 재편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시즌을 준비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올 시즌에는 종규가 아닌 시래가 해줘야 된다”고 했던 현 감독의 속사정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 복잡하다. 굉장히 힘들겠다는 고리타분한 질문 대신 다른 표현으로 돌려 물었다. 분명 본인이 원했던 농구를 펼치기가 쉽지 않을테니….

-‘현주엽 농구’가 이식되고 있나.

“현주엽 농구는 색깔이 없다. 색깔을 찾아가는 농구다. 내 농구가 확실히 무엇이라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그동안 LG만의 농구 색깔이 있고, LG의 현 선수 구성상 잘 할 수 있는 농구가 있다. 여기서 ‘현주엽 농구’를 추구한다? 그러면 나나 선수가 모두 불행해질 것 같다. 유재학, 전창진, 추일승, 유도훈, 또 문경은 감독님 등은 오랜 시간을 거쳐 자기 색깔을 냈다.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 ‘현주엽 농구 색깔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현재 우리 팀 구성에서 가장 효율적 농구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지금 내 농구다.”

-선수들은 ‘현주엽 농구’가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일단 감독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다(웃음). 이전 김진 감독께서는 전체적으로 자율 농구를 했다. 난 공격에서는 자율성을 주는 편이다. 단지 자신 있게 슛을 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세게 한다. 공격은 자율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할 수 있는 작전 몇 개를 섞는다. 대신 수비는 간섭을 많이 한다. 능력보다는 의지와 집중력의 문제니까. 10개를 넣고 10개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신조다. 우리 전력상 공격 대 공격으로 치고 받아서는 이길 수 없다. 수비에서는 현주엽만의 ‘색깔 보태기’가 계속 이뤄지는 중이다.”

-작전, 패턴의 다양성, 또 성공률에 대한 고민이 늘 컸다.

“민감한 얘기인데…. 예를 들어 공격만 보더라도 1대1 농구가 강하면 한 가지 패턴에서 5~6개 패턴이 자연스럽게 파생이 된다. 지금은 한국 농구의 흐름이 그렇지 못하다. 2대2 ‘픽앤롤’이나 ‘픽앤팝’이 대세인데 지도자들이 나서서 일일이 파생 패턴을 붙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김종규가 이적하면서 팀 전체가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전원 대기다. 이전에 10분 뛰던 선수들이 20분 이상 뛰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시래를 통해 전술의 다양성을 가지려 하는데, 시래가 많이 힘들거다.”

-어떻게든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게 지도자다.

“이상적인 LG농구와 현실의 LG농구는 분명 다르다. 현실에서 짜내는 데까지 짜내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른다고 하면 6강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시즌 270경기 전체를 비디오로 보면서 분석한 것에다 유럽 농구를 챙겨보면서 참고한 것들을 토대로 전략을 그렸다. 유럽 농구는 탄탄한 1대1 기본기를 토대로 짜임새가 갖춰져 있다. 스페인 농구를 즐겨보는데 참고할 게 많다. 특히 공격에서 스크린을 통해 공과 패스, 돌파가 이뤄지는 반대편 코너 등에서 기회를 만드는 세부 패턴을 만드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 예능 출연으로 선수들과 심리적 거리 좁혀… “악플? 나 하나 욕먹는 건 상관없어”

-방송에서 선수들과 티격태격하면서 거리감이 많이 좁혀진 듯 하다.

“선수들과 대화 시간이 많아졌다. 거리가 좁혀진 것 같다. 보통 감독들은 언제나 선수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하는데 문턱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감독실 방문을 활짝 열어놨다고 해도 선수들이 잘 안 온다. 방송을 계기로 한 명 한 명 불러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서로 속마음을 나누게 되더라. 선수들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는데, 막상 얘기를 해보면 자기도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나는 전술, 패턴에 관해서 선수들에게 이런 저런 좋은 점, 불편한 점 등을 듣고 잘 맞는 것들은 시즌 중간에라도 끼워 넣는 편이다. 얘기할 시간이 많아지니 선수들 컨디션을 파악한다던가 전략을 수정하고 걸러내는 일들도 한층 쉬어졌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거절하다 선수들과 함께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택했다는데.

“지난해부터 계속 예능 섭외가 있었는데 내 것을 다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농구가 다 죽는다.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 ‘큰 뜻에서 희생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구단에서도 ‘우리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는 분위기가 있어서 출연 결정을 했는데 다행히 선수들도 좋아하고, 또 인기도 올라가고 그러면서 팬들의 관심도 커지고… 정말 좋다. 나 하나 욕먹는 건 괜찮다.”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관련 기사 등에 달린 불편한 댓글도 상당 수다. 현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다.

“댓글은 안 본다. 하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 비난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아는데, 관심이라고 여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플’보다 낫다. 방송을 하면서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더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는 경기장 밖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팬들이 사인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구단 통역도 사인을 해주게 됐다. 더 좋게 봐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어쨌든 리더십의 핵심으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게 아닌가.

“감독으로 첫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로드맵이 소통이었다. 내 지도가 불편하고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선수가 분명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가장 신경을 쓰기로 다짐을 했었다. 나도 현역 때 여러 지도자를 경험해봤는데 말을 편하게 했던 감독님 체제에서 경기에 더 집중하고 기록도 잘 나왔다. 지도자는 작은 것도 배려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현역 시절부터 알았다. 예를 들어 오늘 경기에 한 선수를 선발로 쓸지, 아니면 경기 중간에 넣을지에 대해서도 선수마다 느끼는 색깔이 있다. 그게 불만일 수 있다. 코치를 통한 소통으로는 알아 차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갑자기 지도자가 됐다고 해서 선수들과 소통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했다. 계속 쌓아가는 중이다.”

-자신이 스타 출신 감독이라는 점을 평소에 의식하나.

“그런 거 없다. 현역 때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해져서 내가 스타려니 생각을 했다. 지금은 선수들이 연봉도 많이 받지만 팬들의 애정은 선수가 돈을 받는 만큼의 정도는 아니다.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점에서 지도자인 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농구가 다시 사랑 받는 스포츠가 되고, 정말 경기장에서 앰프 소리가 아닌 거대한 함성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싶다. 선수는 아니지만 내 스스로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무작정 팬들을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생겼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 20년 전 남도에서 농구에 눈을 뜨다

중·고교, 대학, 프로를 통틀어 화려했던 현역 시절, 그리고 은퇴 후 공백기, 이어 해설위원과 잠깐의 방송 출연을 거쳐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감독으로 농구 코트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은지 세 시즌째. 지도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농구 인생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지만 현 감독. 보통의 선수들처럼 농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 ‘변곡점’이 그에게도 있었을까? 농구 인생이 순탄했느냐는 물음에 “선수로 뛸 때는 부상 빼고 후회 없이 했다”던 현 감독. 그런데 대뜸 20년 전 얘기를 꺼냈다.

-20년 전?

“늘 농구가 자신이 있었는데 (청주)SK에서 (광주, 나중에 여수로 연고지 이전) 골드뱅크로 이적하면서 농구가 더 늘었다. 그 때 농구의 눈을 떴다고 해야될까. 그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잘하면 됐는데 이 ‘집’으로 갔더니 이것 저것 해야될 게 많았다.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농구하면서 처음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내 농구가 달라졌다.”

현 감독은 프로농구 1999-2000시즌 도중 SK에서 골드뱅크로 전격 트레이드가 됐다. 중·고교 1년 선배인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같은 팀에서 뛰면서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던시절, 그것도 12월25일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날 트레이드로 인해 엉겹결에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와야 했다. 트레이드가 되기 직전까지 15경기에서 평균 19.6 득점에 6.2도움으로 서장훈과 함께 팀의 주포 역할을 하고 있었던 상황. 어떻게 보면 그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던 기억, 자존심이 상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인생 ‘터닝포인트’로 새기고 있었다.

-본인에게 스스로 현주엽의 가치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을 법 한데. 결과적으로 반전의 계기가 됐다.

“그 전 시즌에 비해 평균 득점 수치가 약간 떨어지긴 했다. 그런데 개별 기록보다 정말 농구를 잘한다는 선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다. 허재형이 농구 센스가 뛰어나고, 득점은 장훈이형이 잘하고, 3점 슛은 경은이형이 좋은데, 그렇다면? 이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기록을 잘 내는 것과 전체적으로 모든 농구를 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경기장에 나갔다. 나무만 보다가 숲을 보게 됐다. 코트 전체에서 벌어지는 농구의 흐름을 그 때 알았다.”

이적 후 현 감독 그 시즌 27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37분 이상을 뛰며 23.7득점에 6.0리바운드, 7.6도움을 기록하는 등 내외곽을 휘젓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맹활약했다. 기록이나 순도 면에서 프로 9시즌을 뛰는 동안 가장 빛났던 시기다.

-느낀 게 많았겠다.

“농구를 잘했는데, 그 때 농구를 배웠던 것 같다. 배우는 건 끊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잘했다고 느낄 때 실제 잘한 것이 아니더라. 최고가 됐을때도 마찬가지로 최고가 아니었다. 내가 어느 수준에서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스스로에게 가장 독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 장훈이형은 농구 인생 동반자


-서장훈이라는 라이벌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더 그런 것 아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자극이 되긴 했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서로 잘했으면 했다. 내가 먼저 은퇴하고 나서 장훈이형 뛰는 것을 보고 ‘저 형이 정말 멋있게 뛰고 명예롭게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농구 인생에서 장훈이형은 나의 동반자다.”

-같이 중, 고교 시절을 보낸 추억이 많겠다.

“고교 무대를 같이 평정한 때도 있었지만 서로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내가 중학교 1학년, 장훈이형이 2학년 때 기억이 난다. 우리 둘은 연습에 끼어들 실력이 되지 않아 구경만하고 공만 닦고 주우러 다니고 했다. 바보 중에서도 상(上)바보들이었다. 하하.”

-고려대 재학 시절 1994~1995 농구대잔치에서 종료 부저와 함께 연세대 서장훈에게 결승골을 허용했을 때 정말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내가 막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공을 못 잡게 했어야 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슛을 던져 넣는 장훈이형이 정말 ‘난 놈’, ‘난사람’으로 느껴지더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중국과의 결승전은 ‘with 서장훈’의 결정판 아닌가?

“내가 연장으로 가는 동점골을 넣었고, 장훈이형이 연장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3점 슛을 터트렸다. 그 당시는 같이 뛰면 작전이 필요 없었다. 잘 아니까. 연장에서 꼭 이겨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내가 연장에서만 6점을 넣었는데 당시 (김)승현이에게 ‘나 전반에 쉬었다가 나와 체력 괜찮으니 패스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승현이가 ‘네’라고 하더니 패스를 잘 줬다. 하하.”

-마지막으로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감독으로 부임할 때 가졌던 구상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목표를 향해 가야되는 입장이다.

“좋은 전력을 꾸려 우승에 도전하고 싶은 건 10개 구단 지도자가 다 같은 마음일 것 같다.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선수가 코트에 있을 때 가장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선수들이 즐거우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코트에 오래 있으려면 부상을 안 당해야 한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 선수들이 부상 없이 코트에서 열정적으로 뛰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다. 먹고 싶다는 건 다 사줄 수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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