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美 나는 中… 한국 유니콘은?… 유니콘, 中 206개-美 203개-韓 6개
창업 네트워크 강한 中, 美도 넘어… 中 대졸자 창업률 한국의 10배
대학들, 공간-컨설팅 등 총력 지원… 산학 손잡고 ‘첨단 클러스터’ 운영
하루에 1만6000개 기업 새로 생겨… 타다 기소 여파 국내 벤처들 어수선
규제 탓 ‘산업 화전민’ 내몰릴 우려
초소형 드론에 카메라를 장착한 ‘팬덤 시리즈’로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의 70%를 석권한 DJI의 대표 왕타오(汪滔). 그는 고액 연봉을 제시한 미국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돌아와 광둥(廣東)성 선전(深(수,천))의 한 잡지사 창고에서 친구 2명과 함께 회사를 세워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다이웨이(戴維)는 베이징(北京)대 재학 시절 넓은 캠퍼스에 많은 자전거가 놀려지고 있는 것을 보고 2015년 동아리 친구들과 초기 자본금 2만2000달러로 공유 자전거 벤처 ‘오포(ofo)’를 창업했다. 오포는 1년여 만에 전국 50여 개 도시로 확대되는 등 선풍적 인기로 세계 최대 자전거 공유업체가 됐다.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바이푸(胡潤百富)가 최근 전 세계 유니콘 494개 중 중국이 206개로 미국 203개를 처음으로 앞질렀다고 발표했는데 한국은 6개였다.
유니콘은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전설상의 말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을 의미한다. 2013년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유니콘은 경제의 역동성과 미래의 경쟁력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DJI나 오포 같은 유니콘 벤처 스토리가 끝이 없다. 더욱이 창업자 대부분은 1980년 이후 태어난 자수성가형 흙수저들이다. 중국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벤처 1세대인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샤오미의 레이쥔(雷軍) 등이 1960년대생인 것에 비하면 한 세대 이상 젊다. 레이쥔이 “태풍이 부는 길목에 서면 돼지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타고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LG디스플레이의 올레드(OLED) 등 한국이 중국보다 한두 발짝 앞선 기술을 가진 분야도 있다. 하지만 미국을 제칠 정도로 치고 올라온 중국 유니콘의 질주는 우리의 미래 산업경쟁력을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중국 경제가 미중 무역 전쟁의 역풍을 맞고 있지만 ‘중국판 스티브 잡스나 마이클 델(델 컴퓨터 창업자)’ 같은 창업자가 넘쳐나 미중 경제 및 패권 전쟁을 쉽게 판가름하기 점점 어렵게 만든다. ○ ‘창의 창신 창업’ 키우는 네트워크
후룬 발표에서 베이징의 유니콘 기업은 82개로 ‘실리콘밸리’의 본고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55개를 앞질렀다. 1∼3위는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 마이진푸(마蟻金服·Ant Financial·‘개미금융서비스’), 영상 공유 앱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 등 중국 업체가 차지했다.
중국에서는 하루에 1만6000개 이상의 기업이 생겨난다. 중국 대학 졸업생의 창업률은 8%로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다이웨이처럼 유니콘 중에는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한 지 수년 만에 창업한 기업이 많다. 한 해 대학 졸업생이 600만 명이 넘어 치열한 구직경쟁에서 창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두껍게 형성된 창업 친화적 생태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무원 등 안정적인 일자리로 몰리는 경향이 높아지는 국내 현실과 대비된다.
중국 이공계 최고 명문인 칭화(淸華)대의 베이징(北京)캠퍼스에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창업 지원을 위한 ‘X-LAB’이 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의 벤처 열기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각 프로젝트팀의 구성원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누군가가 올린 아이디어를 보고 전국에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한 인터넷 쇼핑몰 개발팀은 칭화대 학생이 올린 아이템에 관심 있는 대학 4학년생과 졸업생 등이 헤이룽장(黑龍江) 허난(河南) 푸젠(福建)성 등 그야말로 전국에서 모였다. 중국 이공계 대학은 재학생이나 졸업생 지원을 위한 공간과 전문 부서, 산하기관, 전문 컨설팅 업체 등을 운영하며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X-LAB의 별명은 ‘창의 창신 창업 키우는 싼촹(三創) 공간’이다.
‘개혁 개방의 1번지’ 선전은 이제 ‘창업 용광로’다. 이곳의 화창베이(華强北)는 용산 전자상가의 20배가량 되는 초대형 전자상가로 모든 전자제품에 필요한 재료와 부품이 다 있어 자석처럼 벤처 기업들을 주변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연구개발센터를 이곳에 설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진시황 병마용’의 도시 시안(西安)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는 ‘커지촹신강(科技創新港)’이 설치돼 있다. 대학과 사회가 혁신을 위해 뭉친 ‘첨단 과학 클러스터’다. 중국 이공계 대학은 ‘응용성’을 주요 지침으로 삼는다. 커지촹신강은 대학이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지역, 기업 등과 활발한 교류 속에 연구와 창업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산학연 네트워크다.
‘교우(校友) 경제’도 있다. 동문회 격인 교우회가 졸업생들의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준다. 지난해 찾아갔던 시안자오퉁(交通)대는 ‘시자오(西交) 1896 인큐베이터’ 등 취업 지원 교우회가 150여 개나 된다. 전국 주요 대학들은 선배 기업인이 대학에서 기업가 싹이 보이는 후배를 발굴하고 키우는 ‘교우 경쟁’을 벌인다.
특히 중국 유니콘 급성장의 가장 큰 견인차는 1세대 벤처 기업인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다. 알리바바가 마이진푸나 디디추싱에 투자하고 있고, 최대 벤처캐피털인 ‘레전드 캐피털’은 컴퓨터 제조 대기업 레노버그룹의 자회사다. 유니콘 기업의 절반가량은 BAT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기업이다.
○ “미래 예측하지 않고 만든다”
‘대중창업 만중혁신(大衆創業 萬衆革新·‘모든 대중이 혁신으로 창업하게 하자’는 슬로건)’ 기치하에 ‘규제 없으면 허용한다’는 정부와 사회의 분위기는 대담한 도전자들을 잇따라 탄생시켰다.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평多多)의 황정(黃쟁) 대표는 알리바바, 징둥(京東) 같은 강적들이 버티고 있는데도 ‘산에 호랑이가 있는 줄 알아도 기어이 산에 오른다’며 창업했다. 기존 업체가 대도시 젊은 여성을 주 타깃으로 했다면 그는 농촌 주부와 저가품 시장에 집중했다. ‘농촌이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략이 21세기 벤처 전쟁 시대에도 통했다.
삼성에 며칠 앞서 접는 스마트폰을 처음 발표한 중국 유니콘 로율의 창업자 류즈훙(劉自鴻)의 캐치프레이즈는 ‘미래를 예측하지 말고, 미래를 창조하라’다. 15초 동영상 공유 사이트 ‘틱톡’ 광풍을 일으킨 ‘바이트댄스’의 장이밍(張一鳴)은 개인에 따라 헤드라인이 다르게 보이는 진르터우탸오(今日頭條)를 개발했다.
‘차(茶) 업계의 하워드 슐츠(스타벅스 창업자)’라고 불리는 녜윈천((섭,접)雲辰)은 기존 밀크티가 분말 형태인데 이는 진짜 밀크티가 아니라고 생각해 치즈밀크티 시차(憙茶)로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경직되어 창의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죽의 장막 너머의 거대한 변화를 모르는 것이다.
○ 한국, ‘206 대 6’ 경고 새겨야
우후죽순처럼 많은 기업이 나오면서 참신한 아이디어에 비해 실적이 부진해 사업을 접거나 투자를 받지 못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오포’가 경영 위기를 맞고 디디추싱은 해외 시장 진출 실패로 상장을 연기했다. 올해 2분기 중국 유니콘 기업이 받은 투자액은 94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투자에 참가하는 벤처캐피털 수가 487곳에서 45곳으로 줄었다는 등의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미중 갈등의 역풍도 맞고 있다. 세계 최대 폐쇄회로(CC)TV 제조회사인 하이크비전은 신장위구르지역 인권 탄압에 관여됐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바이트댄스도 틱톡 앱을 통해 미국 청소년들의 개인 정보를 탈취한다는 의혹으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로부터 570만 달러의 벌금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적자생존’의 생태계 속에 성장하는 중국 벤처업체들은 역경의 찬바람을 맞으면 보다 강한 체질로 무장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한국 벤처업계는 ‘타다’ 기소 이후 “정부 국회 검찰이 한 방향으로 스타트업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호소했다. 벤처를 키우는 생태계를 조성하기는커녕 정부의 규제와 정책이 예비 벤처 기업인들을 ‘미래 산업 화전민’으로 내몰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한중 간 ‘206 대 6’이라는 유니콘 숫자가 주는 경고를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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