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의 간판타자 박병호(33·키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더그아웃에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17일 밤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에서 일본에 3-5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한 뒤였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경기부터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한국 대표팀의 4번 타순을 지킨 박병호의 최종 성적은 타율 0.179(28타수 5안타)에 2타점. 홈런은 단 한 개도 없었고 안타 5개는 모두 단타(장타율 0.179)였다. 조별리그 때부터 3경기 12타수 2안타로 부진했지만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홈런왕 박병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팬들의 비난에도 특유의 뚝심으로 ‘4번=박병호’를 밀어붙였다. 박병호도 슈퍼라운드 막판 3경기에서 매 경기 안타를 치며 믿음에 화답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회 2연패 여부를 결정짓는 결승에서 박병호의 방망이는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팀 스포츠인 야구의 특성상 박병호 한 명 때문에 패한 건 아니겠지만 비난의 화살은 주로 박병호를 향했다. 김 감독의 뚝심 야구도 ‘고집의 야구’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도마에 올랐다.
프리미어12 전부터 박병호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정규시즌을 마친 뒤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KS)까지 11경기를 더 뛰면서 평소 안 좋았던 손목에 사구를 맞아 상태가 더 나빠졌다. KS에서는 종아리까지 탈이 나 주루에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대신 “한결 좋아졌다”는 말로 묵묵히 대표팀에 합류한 박병호였다.
그는 과거 ‘국거박’(국민 거품 박병호) ‘목황상제’(규모가 작은 목동구장 홈런왕) 등 누리꾼의 도 넘은 악성 댓글에 마음고생을 하며 고소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번엔 그 어떤 비난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가장 커 보였다. 18일 취임식 행사를 가진 손혁 키움 감독도 “훈련은 둘째치고 최대한 쉬게 할 생각”이라며 박병호를 감싸고 걱정했다.
올림픽 전초전인 프리미어12 결과를 두고 팬들이 손가락질하거나, 박병호가 움츠러들 이유는 없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한 나라 중 가장 먼저 내년 도쿄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겠지만 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올림픽 티켓을 위해 아시아 경쟁국인 호주, 대만이 눈에 불을 켠 상황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국민타자’ 이승엽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은 올림픽(2008년 베이징)에서 부진을 겪다 준결승(일본), 결승(쿠바)에서 홈런을 치며 부활했다. 경기 후 “후배들에게 미안해서”라며 흘린 눈물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프로 데뷔 후 오랜 시간 눈물 젖은 빵을 먹다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우뚝 선 박병호. 그에게는 도쿄 올림픽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눈물을 뜨겁게 흘려볼 만한 진짜 무대가 될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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