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위암 수술을 받고 경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A 씨(52)는 최근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600만 원 넘는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본인부담금만 약 30만 원 냈는데 당황스러웠다. 원무과에서는 “요양병원에 청구하면 건강보험 적용분을 돌려준다”고 했지만 당장 약값과 재활치료비 내기도 빠듯한 A 씨에게 환급까지의 2, 3개월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최근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 환자들이 외래 진료비 부담 때문에 퇴원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요양병원 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 받을 때 요양급여의뢰서가 없으면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건강보험요양급여규칙이 시행되면서다. 의뢰서가 있어도 우선 진료비를 전액 내야 한다. 이 진료비 중 환자가 부담하는 5%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이 입원한 요양병원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이전에는 없어도 됐던 수백만 원이 필요해졌다. 이 부담을 지기 어려운 환자들이 요양병원을 나간다.
건강보험 혜택은 그대로인데 왜 절차만 까다로워졌을까. 정부는 요양병원에서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은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도 자신이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걸 알리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요양병원 입원과 외래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중복 지급되는 일이 많았다.
이는 요양병원이 진료, 검사 등 개별 진료행위에 따라 수가(酬價)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환자의 입원일수(日數)만큼 정해진 금액을 받는 정액 수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받는 돈이 정해져 있으니 환자가 다른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요양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는 구조다.
정부가 이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은 칭찬할 일이다. 다만 장기간 비싼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암 환자의 사정을 좀 더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최근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환자 30여 명이 원치 않게 퇴원했다.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면 예전처럼 본인부담금 5%만 내고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올 6월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했을 때 이런 혼란은 예상됐다. 하지만 복지부는 제도가 시행돼 암 환자들의 반발이 커진 뒤에야 암 치료를 위한 외래 진료는 예외로 하겠다는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책은 취지가 좋더라도 디테일이 부족하면 환영받기 힘들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보건의료정책은 더욱 그렇다.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암 환자와 가족들이 ‘유전(有錢)입원, 무전(無錢)퇴원’을 외친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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