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小國의 설움과 욕망… 강렬한 필치로 얽은 ‘김진명 월드’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그때 그 베스트셀러]1994년 종합베스트셀러 2위(교보문고 기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2/김진명 지음/486쪽, 481쪽·각 권 1만3800원·새움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1993년 3월, 한반도엔 전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하고 1년 후 국제원자력기구에서도 탈퇴한다. 대학교 새내기였던 나는 까맣게 몰랐지만, 당시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전쟁 직전에 있음을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한국 증시는 폭락했고 펜타곤에서는 전쟁 발발 시 사망자 수를 추정하고 있었다. “서울 불바다” 발언에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우연이었을까. 북한 핵 때문에 나라가 뒤숭숭하던 1993년 8월, 광복절을 며칠 앞둔 시점에 독특한 제목의 세 권짜리 책이 출간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6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된다. 사람들은 저자 김진명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현대 한국사의 온갖 모순과 집단적 욕망이 뒤엉킨 문제작이자 이후 김진명 작가의 영원한 시원(始原)이 되는 작품이다. 모두 알다시피 이 책은 실제 현대사에서 큰 모티프를 따온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계획과 그에 대한 미국의 감시, 교통사고로 요절한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가 그것이다(이 박사의 유족들은 이 작품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작품은 ‘김진명 월드’의 스토리들이 그렇듯이 의문의 죽음, 그것을 추적하는 주인공,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들, 그 세력들이 감추고자 하는 진실, 절대반지급 진실의 힘을 얻게 되는 결론과 용서 등으로 전개된다. 고전 서사에서도 보이는 단순한 플롯에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필력이 더해져, 그야말로 페이지 터너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을 평범한 베스트셀러가 아닌, ‘김진명 월드’의 시작으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 전에도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 같은 먼치킨(Munchkin·극단적으로 강한)급 주인공의 사이다 마초물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이유는 ‘저 깊은 곳의 뭉클한 애국심’ 때문이다. 김진명 작가는 이리저리 치이는 작은 나라 사람들의 울분을 건드리는 한편,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말이야, 어떤 민족인 줄 알아?’ 하는 자부심에 불을 지피고, 그것을 방해하는 주변 강국을 악으로 그려내는 삼각구도를 완성한다. (북한을 포함한) 우리 민족은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민족인데 지금은 잠시 가려져 있는 상태라는 것, 우리의 진정한 힘을 각성할 때에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는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와 지소미아 사태를 보면 다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꺼내 읽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친한 일본인이나 미국인에게 선뜻 권할 수 있을까. 복잡다단한 국제관계를 더 알아야 할 지금 과연 단순한 울분과 쾌감에 젖어도 되는 것일까 자문하게 된다.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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