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일인 지난달 14일 오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22년 전인 1997년 본부를 통해 신장을 이식 받은 박지원 씨(38·여)였다. 박 씨는 “오늘 제 딸이 수능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신장을 기증해 준 홍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딸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꼭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박 씨에게 신장을 기증한 홍상희 씨(78·여)는 1991년 국내 최초로 신장을 기증했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83)의 아내다.
박 씨와 홍 씨는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2년 본부 행사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17년 만이다. 이날 박 씨는 둘째 딸 이한나 양(17)과 함께 본부를 찾았다. 한나 양은 홍 씨의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태어났어요”라고 했다. 박 씨는 “첫째 딸 주은이가 수능시험을 보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 씨는 고교 졸업 후 8년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혈액투석을 했다. 체중이 늘면 신장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물 한 모금도 맘대로 마시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때 투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둘째 딸이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남편이 가출해 생계와 육아를 혼자 책임지던 박 씨는 2006년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박 씨에겐 기억상실이라는 후유증이 남았다. 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이전의 기억을 대부분 잃었다. 박 씨는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을 겪은 뒤 두 딸과의 기억도 지워졌다”면서도 “신장 이식 수술 전날 홍 선생님이 저를 보러 입원실에 오셨던 건 기억한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홍 씨의 신장 기증은 두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생명 이음’은 점차 줄고 있다. 생존자의 장기기증은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지만 대부분 부모나 형제자매 등 8촌 이내 혈족으로부터의 기증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이뤄진 혈족이 아닌 타인의 신장 기증은 2011년 16건에서 2017년 6건, 지난해 2건으로 계속 줄었다. 뇌사자 장기기증 역시 2016년 573명에서 2017년 515명, 지난해 449명으로 감소했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선 기증인과 기증인 가족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이식인과 기증인 가족이 편지나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뇌사자 기증의 경우 장례 절차 지원도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생존 시 기증자의 경우 수술 후 건강은 물론이고 심리 상태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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