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車노조의 관성파업[현장에서/김도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셀토스를 생산하는 모습.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셀토스를 생산하는 모습. 기아자동차 제공
김도형 산업1부 기자
김도형 산업1부 기자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결국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18일 주야간조 2시간씩의 부분 파업에 이어 19일에는 4시간씩의 부분 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열심히 일한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할 수 있고, 협상이 제대로 안 되면 절차에 따라 파업할 수 있다. 하지만 기아차의 이번 파업 결정 과정을 보면 논리나 정당성 면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게 많다.

기아차 노조와 사측은 10일에 2019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다. 기본급 4만 원 인상(호봉 승급 포함) 등 거의 모든 조건이 형제사인 현대자동차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합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13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이 합의안은 부결됐다. 노조 집행부는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마자 갑자기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심판한 것’이라고 했다. 임금협상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교섭으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자아비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뭔가 보여주려는 듯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조 집행부는 “사측의 오만방자한 행동에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것이 조합원의 의견이고 조합원의 뜻을 무시하는 사측의 행동에 경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뭐가 무시고, 뭐가 오만방자한 것일까. 당초에 마련된 합의안은 노사가 함께 만든 것이었다. 연내 임금협상 마무리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새 노조 집행부가 동의한 내용이다. 조합원 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됐다고 해서 집행부가 사측에 대해 ‘무시’ ‘오만방자’를 외치기엔 느닷없다. 합의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잡음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기아차 안팎에서는 합의안이 부결되자 ‘또 파업하겠군’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레 나왔다. 합의안이 부결됐으니 파업으로 실력을 행사해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힘을 얻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던 것이다. 실제로 노조는 이틀간 파업 뒤 20일에 다시 교섭에 나서기로 했다. 이쯤 되면 필요에 의한 파업이 아니라 ‘학습된 파업’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합의안이 부결되면 새 협상을 진행하면 된다. 많은 회사에서 그렇게 한다. 회사와 마주 앉기도 전에 파업 깃발을 일단 들고 보는 것은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맏형으로 꼽히는 현대차 노조는 올해 8년 만에 분규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 지으며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 새로 당선된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뻥파업’, ‘묻지 마 투쟁’을 이제 조합원들도 식상해한다고 분석했다. 무조건 파업으로 대응하는 기존 투쟁 방식이 지역사회와 국민들에게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의 결과다. 습관적 파업은 무기로서의 위력도 떨어진다.

자동차 산업이 사느냐 죽느냐의 전환기에 들어선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단순히 산업만이 아니라 그 산업에 속한 기업의 노조 역시 관성에 따를 것인지, 새롭게 변화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김도형 산업1부 기자 dodo@donga.com
#기아자동차#노동조합#임금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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