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당신의 질환을 노출시키거나 추측성 진단을 내려 퍼뜨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해당 의사는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최근 SNS를 통해 환자 개인정보 등의 노출이 잇따르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신정)는 의사들이 SNS에서 지켜야 할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SNS 사용 가이드라인 초안’을 최근 공개했다. 환자들을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의료진이 SNS를 통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PC방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피해자를 치료한 의사가 작심하고 SNS를 통해 피해자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개인정보 노출과 의료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또 수술실에서 환자 상태가 고스란히 보이는 상태에서 의료진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이를 SNS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수년 전 한 성형외과에서 병원 로비에 수술 환자들의 턱뼈를 모아놓은 이른바 ‘턱뼈 탑’을 설치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명 연예인이 병원을 찾았다며 의료진이 자신들의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많이 봐 왔다.
의협의 가이드라인 초안에는 의사는 환자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 법규와 의사윤리지침이 SNS 사용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며, 식별 가능한 환자 정보를 SNS에 게시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돼 있다.
소셜미디어는 카카오톡,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말한다. 소셜미디어 논란에 대한 윤리 규범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의사단체는 대신정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다른 의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SNS상에 글을 많이 올리고 본인이 직접 보지 않은 환자나 유명인에 대해 정신병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논란이 돼 대신정 윤리인권위원회에서 처벌을 받은 의사들도 있다. 최근 특정 정치인을 정신질환자로 진단한 의사가 회원 자격정지를 당했다. 또 배우 유아인이 SNS에서 일반인들과 논쟁을 벌이자, 직접 진료하지도 않았으면서 ‘경조증’ 위험이 크다고 언급한 의사는 다른 윤리 위반 행위와 결부돼 영구 제명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 윤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3년 미국정신과학회가 만든 ‘골드워터 룰’이다. 1964년 한 잡지사가 미국 상원의원이자 당시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가 대통령으로서 적합한지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 응한 2417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 가운데 절반이 “골드워터의 정신상태는 대통령직 수행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이에 골드워터는 잡지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당시 편집장은 7만5000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정신과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의견을 대중매체에 제시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 직업윤리를 공표했다. 오직 직접 진료를 했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특정인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대신정도 한국판 골드워터 룰을 학회 정책으로 채택해 모든 회원들이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표현의 자유 또는 ‘타인의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익을 위해 그 사실을 경고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duty to warn)’와 상충해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SNS에서 잘못된 정보나 민감한 내용이 퍼지면 당사자들이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늦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대신정과 의협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 아쉬운 점은 있다. 국내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의사들이 받는 처벌이 회원자격 박탈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의사들이 회원자격 박탈과 상관없이 계속 환자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이들은 학회 회비를 내지 않고도 환자를 보니 거꾸로 가는 세상이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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