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졸업한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더군요. 한 교실에 70명 가까이 모여 앉아 토론은 전혀 없이 강사가 하는 말을 받아 적고 있으니 말이에요.”
몇 해 전 1년 과정의 고위공무원 고위정책과정 훈련을 다녀온 중앙부처의 국장급 A 씨. 그가 체험한 공무원 재교육 현장은 지금은 일선 중고교에서도 이미 사라진 1970년대 개발 경제 시대의 주입식 교육과 유사했다.
A 씨가 참여한 것은 고위공무원 재교육을 위한 국내 장기 훈련 프로그램. 중점 교육 내용은 ‘공직가치의 능동적 해석’ ‘직무전문성 강화’ 등이다.
실제 교육은 하루 종일 교실에 틀어박혀 수업을 듣는 입시생 일과와 비슷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간표에 맞춰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오전 8시부터 9시까지는 체력단련을 했고 이어 9시부터 1시간 동안 외국어 수업을 들었다. 이어지는 시간에는 강의와 점심시간, 또 강의가 지루하게 반복됐다.
서로 다른 부처에서 핵심 자리에 있다가 온 인력들이기 때문에 실제 정책에서 이견이 있는 주제를 놓고 소규모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일주일간의 합숙으로 시작한 교육 훈련은 그렇게 10개월 동안 단체수업만 듣다가 끝났다.
▼ 공무원들 “부실한 교육훈련, 전문성 떨어뜨려” ▼
고위공무원 재교육
정부는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무원 인재개발법’이라는 법률까지 만들어 공무원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 공무원들 역시 교육 훈련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8년 공직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전문성 저해 요인 2위는 ‘교육 훈련 및 자기 계발 시간 부족’이었다.
하지만 교육 훈련에 참여해본 공무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 교육은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론에 치우친 내용이 많다. 체력단련과 합숙처럼 직무 관련성이 없거나 낡은 형태의 교육 방식도 쓰이고 있다. 물론 훈련 기간을 안식년 정도로 취급하며 대충 시간만 보내고 오는 공무원들의 잘못도 있다.
해마다 나랏돈 수백억 원을 들여 수개월에서 최장 2년간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국외 장·단기 훈련’도 마찬가지다. 해외 각국에 나가 직접 선진 정책을 배워 온다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국가가 일 잘한 공무원에게 주는 보상’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시설 안전 관리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공무원 B 씨는 얼마 전 유럽의 한 대학에서 저출산 정책을 연구하고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주제를 공부한 것에 대해 “아이가 둘이라 개인적으로 출산 정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수를 마치고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참고문헌도 없이 기존 국내 연구보고서를 짜깁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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