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고 나이를 먹었다. 내게는 멘토와 같은 미국의 한 심리학자와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위쪽으로 떨어지다(Falling Upward)’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연말 휴가 중 읽었던 이 책은 미국인으로 프란체스코회 신부인 리처드 로어가 쓴 책이다. 로어 신부는 영적 지도자로 오프라 윈프리쇼나 구글에 초대를 받은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이 책에서 설명한다. 후반부 인생이라고 하면 나이 먹고, 은퇴한 뒤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먹지만, 누구나 인생의 후반부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전반부 후반부는 어떻게 다를까? 전반부는 성취하고, 올라가려고 하며, 자신을 규정하려고 한다. 이때에는 나는 여기에는 속하지만 저기에는 속하지 않고, 나는 이런 사람이지만 저런 사람은 아니라고 배타적으로 정의하게 된다. 로어는 이와 같은 전반부 인생을 ‘컨테이너’를 짓는 작업으로 비유한다.
그러다가 사람은 위기를 경험한다. 때로는 자신의 질병이나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위기가 오기도 하고, 사업 실패나 실직,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위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잘나가는 사람이든 못나가는 사람이든 ‘얼마 동안은 운전석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 위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기 이후에도 전반부 인생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후반부로 접어들게 된다. 위기를 통해 삶의 후반부로 건너가게 되는 사람들은 착한 자녀, 성실한 학생, 충성스러운 직원으로 전반부에서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이 전반부에 만든 컨테이너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고민한다. 후반부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전반부에 자신이 믿고 따랐던 삶의 문법이 더 이상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문법으로 살아가게 된다. 즉, 이들은 전반부에서 배웠던 것을 더 강화하는 학습이 아니라 이를 잊어버리고(unlearn) 새로운 학습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로어 신부는 달라이 라마의 “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켜라. 그래야 그것을 제대로 어길 줄 알게 된다”는 말을 인용한다. 위기를 겪고도 후반부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런 위기가 발생해야 하는지 한탄만 하고 자신이 전반부에 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장벽을 쌓는다. 어떤 사람은 60대에도 전반부를 살지만, 10대에도 후반부를 사는 사람이 있다. 후반부란 나이와 상관없이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로어의 주장이 직장인의 삶과 무슨 상관일까? 직장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어는 “집이란 그 안에 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오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집을 직장으로 바꾸어도 딱 맞는 말이겠다 싶었다. 직장은 그 안에서 계속 다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직장과 나는 계약 관계일 뿐이며, 100세 시대에 직장생활하며 번 돈으로 은퇴 후에 안락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은 많이 다녀야 20대 중반에 들어가 50대 중반이 되기 전에 나오는 곳이다. 30년 다니기 힘들다. 이 말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장에만 충성할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개인기, 즉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직장은 남의 것이지만, 직업은 내 것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직업을 만들든, 아니면 월급을 받는 안정된 시기 동안 자기만의 다른 직업을 만들든 그것은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직장을 다니는 문법도 바꿔야 한다. 이 시대의 직장이란 더 일할 수 있고, 더 일하고 싶고, 더 일해야 하는 때에 자의 반 타의 반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직장이 직장인을 대하는 방식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직장인이 직장을 다니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위로’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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