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어 무섭게 큰 中 ‘AI굴기’… 의료 교육 금융까지 무한융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5일 03시 00분


[글로벌 AI 전쟁, 미래를 잡아라]
<4> AI영토 넓히는 중국

《의사도 못 잡는 질병을 인공지능(AI)이 잡는다. 안면인식 AI 기술로 범죄자를 추적한다. 중국이 ‘AI 굴기’의 닻을 올렸다. 교육 의료 금융 엔터테인먼트 농업 치안 등 모든 산업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AI와 다른 산업 간 융합을 뜻하는 ‘AI+(플러스)’의 성장세가 무섭다. 중국 AI의 가파른 성장은 ‘무(無)규제’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의 한 경제 관리는 “기술 활용을 막지 않는 관용적인 태도를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국 AI의 현주소를 소개한다.》

지난해 4월 19일 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라오허(饒河)현의 작은 농촌 마을 샤오자허전(小佳河鎭). 주민 주타오(祝濤) 씨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다급히 보건소를 찾았다. 의사는 얼마 전 도입한 인공지능(AI) 의료 진단 시스템인 ‘스마트 의료 조수’에 주 씨의 증상을 입력했다. 진단 결과는 심근경색. 주 씨는 곧장 라오허현 병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괜찮다’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주 씨는 ‘AI 의사’의 진단이 마음에 걸려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哈爾濱)시 병원으로 향했다. 하얼빈시 병원 의사는 황급히 응급조치를 한 뒤 “조금만 늦었어도 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이 AI 의사는 음성인식 AI 기술로 유명한 중국 기업 커다쉰페이(科大訊飛·아이플라이텍)와 칭화(淸華)대가 개발했다. 농촌 지역 보건소 1153곳에 설치된 이 AI 의사는 기본 질병의 95%를 진단할 수 있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서 만난 커다쉰페이 화남지역본부 우쥔화(吳駿華) 부총재는 “중국에서 매일 환자 1만여 명을 진료하는 AI 의사가 앞으로 사람 대신 질병을 진단할 것”이라며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것이 중국 AI 발전의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 無규제 바탕으로 AI와 산업 무한 융합

광저우에 위치한 공립 광둥성 제2인민병원은 AI 진단 시스템과 인터넷 진료를 결합해 광둥성 내 2277개 빈곤 농촌 지역 보건소에서 무료 원격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톈쥔장(田軍章) 제2인민병원장은 “예전엔 환자들이 (의료 수준이 떨어진다며) 농촌 의사를 믿지 않았지만 AI 진단 시스템을 도입한 뒤 오진이 크게 줄어 광둥성 농촌 보건소 진료 비율이 70%에서 85%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자는 광저우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개최한 ‘신성장정책교류회’ 일환으로 한국 정부 관계자, AI 전문가들과 함께 광저우와 광둥성 선전(深(수,천))시의 AI 기업들을 찾았다. 중국은 AI 기술을 의료뿐 아니라 교육, 스마트도시, 치안, 제조업, 소매업, 금융, 교통, 고객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농업 등 광범위한 산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중국은 AI와 다른 산업의 융합을 강조하는 ‘AI+(플러스)’라는 말을 쓴다. 이를 바탕으로 AI 산업은 일상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커다쉰페이는 AI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개발했다. 바이두는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금융, 농경 자동화, 기상 식별 등 다양한 산업에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었다.

AI 기술과 기존 산업 간 융합이 활발한 것은 중국에 관련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협력연구원 전자상거래연구소 장리(張莉) 소장은 “중국 정부는 기업들의 기술 활용을 막지 않는 관용적 태도를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 “방대한 빅데이터 활용이 비용보다 중요”

중국 광둥성 선전시 화웨이 본사 내부 전시관에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스마트도시 운용 화면. 선전시 룽강구에서 활용 중인 모델을 사용해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스마트도시 시스템으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중국 AI 기업 상탕커지(센스타임)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면인식 시스템. 운전자 운행 모드에서 운전자가 전화를 하자 이를 바로 인식해 경고를 알리는 붉은색 표시가 떴다. 선전=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광둥성 선전시 화웨이 본사 내부 전시관에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스마트도시 운용 화면. 선전시 룽강구에서 활용 중인 모델을 사용해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스마트도시 시스템으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중국 AI 기업 상탕커지(센스타임)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면인식 시스템. 운전자 운행 모드에서 운전자가 전화를 하자 이를 바로 인식해 경고를 알리는 붉은색 표시가 떴다. 선전=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AI 산업 발전을 가속화하는 또 다른 축은 국가 주도로 관리하는 빅데이터다. 제2인민병원 톈 원장은 “국내 병원들과 협력해 약 3억 건의 환자 데이터를 보유한 시스템을 갖췄다. 국가 차원의 의료 데이터베이스도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제2인민병원은 화웨이 등 여러 AI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공립병원이 AI 프로젝트 개발비용을 기업에 어떻게 지불하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기업이 기술 개발 비용을 제공한다. (우리가 축적한 빅데이터를 토대로) 자신들의 AI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 범위를 다른 산업으로 확대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 안면인식 AI 기업 상탕커지(商湯科技·센스타임)는 중국 공안이 제공한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스마트도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선전시에서 만난 상탕커지 화난(華南)지역본부 관계자는 위성 기반 감시카메라를 활용한 스마트도시 기술을 소개하면서 “중국 정부 부처가 주요 고객이다. 중국 100여 개 도시가 우리 기술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탕커지가 “상하이(上海)에서만 감시카메라 7만 대를 사용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상탕커지가 상하이에 도입한 안면인식 AI 기술을 활용한 범죄자 추적, 사고가 우려되는 군중 밀집 지역의 유동 상황 확인 등이 가능한 시스템을 대형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안(경찰)이 제공한 실제 데이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커다쉰페이는 상하이시 정부 의뢰로 음성인식 AI 기술을 이용해 보이스피싱을 99%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상하이 공안당국은 커다쉰페이에 보이스피싱 전화 내용 데이터를 제공했다. 감시사회 우려를 의식한 듯 중국 기업 관계자들은 “우리는 (당국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술을 제공할 뿐 데이터를 수집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 화웨이 “AI인력 100만명 양성… 세계 기술표준 만들 것” ▼

“추론능력 갖춘 AI칩 개발 집중… 5년간 1조7000억원 투자계획”
바이두도 매출 15% AI에 투자


“앞으로 5년간 화웨이의 글로벌 인공지능(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수,천))시 화웨이 본사에서 만난 슝이후이(熊亦暉) 스마트컴퓨팅업무부 마케팅 부총재는 “이를 통해 AI 산업에서 개발인력 100만 명을 키워내고 소프트웨어 개발 파트너 3000곳, 대학·연구기관 1000곳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의 AI 투자 계획은 “2020∼2031년 AI가 각 산업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화웨이의 AI 발전 로드맵을 토대로 한다. 2030년까지는 자율주행차와 스마트 의료 진단, 언어 의미 분석 등이 가능한 ‘범용 AI’ 시대다. 인식과 추론 능력을 갖춘 이때의 AI 기술은 AI 칩을 사용해야 구현이 가능하다. 2030년 이후는 휴머노이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슈퍼 AI’ 시대다. 의식과 자각 능력을 갖춘 이 시기의 AI 기술은 두뇌 수준의 칩이 필수적이다.

화웨이는 AI 기술을 자사의 모든 제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특히 AI 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AI 칩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슝 부총재는 AI 연산을 위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구성하는 화웨이의 ‘다빈치 아키텍처’의 성능에 대해 “기존 CPU가 1번 연산할 때 이 장치는 4090번 연산한다”고 소개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화웨이의 AI 트레이닝 클러스터인 ‘아틀라스 900’의 연산 속도와 다른 기업 클러스터 간 수준 차이에 대해서는 “100m 달리기 경기에서 1등이 결승선을 통과해 물 한 병을 모두 들이켜고 나서야 2등이 종점에 들어오는 정도”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화웨이는 AI 칩에 대한 집중 투자를 바탕으로 AI 산업 분야에서 화웨이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슝 부총재는 “더 많은 기업이 우리 제품을 쓸수록 표준이 (화웨이로) 바뀐다. 생태계 구축은 이런 의미”라고 말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AI 기업 바이두(百度)는 지난해 매출 1023억 위안(약 17조 원) 가운데 15.4%에 달하는 158억 위안(약 2조6000억 원)을 AI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선전시 바이두 화남지역본부 관계자는 “바이두 직원 3만 명 가운데 1만 명이 AI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 세계에 AI 개발 실험실 7곳, 연구개발(R&D) 센터가 6곳 있다”며 “이런 투자 덕분에 AI R&D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년 만에 AI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라고 했다.

선전·광저우=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ai 산업#인공지능#상탕커지#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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