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index)는 숫자로 이뤄져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흐름이다. 숫자 자체의 크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블룸버그뉴스가 발표한 국가별 혁신지수에서 한국의 생산성은 105개국 가운데 29위로 밀렸다. 지난해에는 18위였는데 1년 새 11계단 떨어진 것이다.
블룸버그만 한국의 생산성에 경보음을 울린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로 노동생산성을 꼽았다. OECD는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던 장시간 노동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효과가 줄었고,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상위 50% 국가의 절반 수준이다.
생산성 증대는 시장 확대와 더불어 경제 성장에 필수 조건이다. 결국 최근의 생산성 하락은 한국 경제의 장기 둔화를 예고하는 셈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노동 투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는 공장 자동화나 설비 증대 등 자본 투입으로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신규 투자에 소극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0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를 보면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투자를 축소한다는 의견이 39.4%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보다 채용을 줄인다(35.6%)는 곳이 늘리겠다(19.3%)는 곳보다 많았다.
필요한 건 기업들의 규제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규제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다시 한 번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고용 창출에 부정적일 수 있다며 올해는 최저임금을 노동생산성 증가율 내에서 인상하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노동시장 개혁 역시 필요하다. 정부는 고용 안정만을 강조하지만, 안정성 중심의 고용 환경에서는 기업이 투자를 회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금 지급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중소기업으로 전가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IMF가 지난해 한국 정부에 재정 확대를 권고하면서도 노동 개혁을 주문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IMF는 “노동정책의 근간으로 ‘유연안정성’이 채택돼야 한다”며 “노동 개혁이 잠재력을 높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유연안정성은 기업에는 고용유연성을 주고 실직자에게는 정부 지원과 재취업 기회를 제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꾀하는 정책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규제·노동 개혁 의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들에 투자와 채용을 늘리라고 채근하거나, 재정을 투입한 공공 일자리에 힘입은 고용률 상승을 경제 성과로 내걸고 있다. 외부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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