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편리한 물건이지만 괴로움을 안기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컴맹은 컴맹대로, 또 웬만큼 안다는 사람도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컴퓨터세상」.「만능컴 애물컴」시리즈를 통해 그런 요지경속을 들여다 보고 진짜 「컴도사」가 되는 길을 함께 모색해본다.>>
「金鍾來기자」「비밀번호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제 비밀번호(패스워드)가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은행통장 현금신용직불카드는 물론 PC통신 인터넷 홈뱅킹 텔레뱅킹 무선호출기(삐삐) 휴대전화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비밀번호를 쓰지 않는 데가 없다.
우리 생활 속에 너무 깊게 자리잡아 외우고 다녀야 하는 비밀번호 수만 따져도 이미 수십 개에 이르고 있다.
윤모씨(26·여·회사원)는 최근 낭패를 겪었다. 10개가 넘는 비밀번호를 외우고 다니다가 그만 현금카드의 비밀번호를 잊은 것.
그녀는 결국 은행에 가서 현금카드를 반납해야 했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비밀번호에 거꾸로 당한 셈이다.
비밀번호는 아무데나 써놓을 수도 없고 따로 메모해놓고 볼 수도 없다.
네 자리 번호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특수기호가 들어가는 여덟 자리 문자로 지정해야 하는 것 등 비밀번호가 제각각 다른 형태여서 한가지로 통일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일부 은행은 개인이 은행카드를 도난 분실하면 원래 비밀번호에 1을 더하거나 앞의 숫자를 자동으로 바꾸는 등 원하지 않는 번호로 둔갑하기도 한다.
한 은행직원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은행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PC 소프트웨어에까지 비밀번호 투성이다. 인명이나 주소록관리 프로그램, 화면보호기(스크린세이버) 일기장 가계부 워드프로세서 문서까지 암호가 있다.
PC통신과 인터넷에서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PC통신의 성인전용 서비스나 인터넷의 온갖 웹 사이트에서는 반드시 사용자번호(ID)와 비밀번호를 요구한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다보면 엄청난 ID와 비밀번호에 파묻히게 된다.
얼마전 인터넷 ID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낭패를 겪은 회사원 김모씨(32)는 『30개가 넘는 비밀번호를 컴퓨터에 담아 데이터베이스 관리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