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權宰賢기자」 서기 2010년 12월 20일. 무역회사에 다니는 임모씨(34)는 로스앤젤레스의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오전 6시반경 로스앤젤레스행 초음속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오전 7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반도를 벗어나면서 고도를 높이고 기장의 안내방송과 함께 초음속비행을 시작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기내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임씨는 바이어와 협상할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본열도에서 다시 고도를 낮춘뒤 마하 0.95로 아음속(亞音速)비행을 하던 비행기는 태평양에서 다시 마하 2.4의 속력으로 초음속비행에 들어갔다. 임씨는 기내상영 영화 1편을 본 뒤 잠시 수면을 취했다.
1시간반도 채 못잤을 때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임씨를 깨웠다. 비행기는 5시간만에 로스앤젤레스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현지 시간 19일 오후 7시.
임씨는 마중나온 바이어를 만나 저녁식사(임씨의 경우는 점심식사)를 하며 계약을 성사시킨 뒤 밤 11시경 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 면세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기를 딸의 크리스마스선물로 사들고 밤12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맞바람으로 출발때보다 1시간가량 더걸린 6시간 후 서울에 돌아왔을 때 현지시간은 20일 밤 11시.임씨는 왠지 뿌듯함을 느꼈다. 이틀을 하루에 산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이처럼 미항공우주국(NASA)이 민간항공기제작사인 보잉 등과 함께 2005년을 목표로 개발을 추진중인 초음속민간항공기(HSCT)가 도입되면 현재 서울∼로스앤젤레스 항공시간 12시간은 5시간대로 절반이상 줄게 된다.
보잉사가 계획중인 HSCT는 고도 1만5천∼1만9천m의 성층권을 마하2.4의 속력으로 날게 된다. 탑승승객은 2백50∼3백명. 항속거리는 9천3백㎞에서 2015년까지 1만3천㎞로 확장할 계획이다.
초음속 민간항공의 시대는 지난 69년 3월 콩코드기의 첫비행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콩코드기는 시장수요부족과 환경문제 해소를 위한 기술부족으로 상징적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항공시장이 2000년까지 매년 평균 5.9%씩 성장하고 하루평균 장거리항공여행객도 2000년 31만5천명, 2015년 60만7천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초음속항공기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시장수요의 확대와 더불어 기술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추진중인 초음속 민간항공기의 과제는 크게 환경친화기술과 초고속 항공기술 개발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환경문제 해결의 첫째 과제는 소닉붐(음속을 돌파할 때 생기는 충격파로 인한 폭발음)의 해소. 마하 2로 비행하는 콩코드의 소닉붐은 유리창을 깰 정도인 90㏈. 그래서 초음속비행은 육지에선 금지되고 있으며 충격을 받을 대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바다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현재로선 소닉붐의 완전제거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체공학적 디자인을 통해 그 충격을 완화하고 이를 수용하는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보잉사의 맬컴 매키넌 HSCT 생산개발 및 기술 기획실장(53)도 『이 분야만큼은 현재까지 뚜렷한 기술성과가 없다』고 토로했다. 단지 사막이나 시베리아같은 동토지대에서의 초음속 비행이 검토되고 있다.
둘째는 이착륙시의 엔진소음 문제. 초음속비행에는 고속의 연료와 공기 분사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심한 소음이 발생한다. 현재 NASA와 보잉사는 이를 줄이기 위해서 고속의 엔진 분사 기류를 저속의 외부공기와 섞고 방음장치가 된 도관을 통과시켜 소음을 줄이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또 엔진추진력은 똑같이 유지하면서 기존 엔진 소음을 18㏈ 이상 낮출 수 있는 엔진도 개발됐다. NASA는 현재 이 소음을 5㏈까지 낮추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셋째는 성층권에 대한 산화질소(NOx)분사에 따른 오존층 파괴. 일반항공기는 2만m이하의 대류권을 비행하는데 비해 초음속항공기는 이보다 높은 성층권을 비행한다. 이때 비행기 엔진에서 분사되는 산화질소들이 촉매작용을 일으켜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미국의 프래트 앤 휘트니와 제너럴 일렉트릭 등의 엔진제작회사들은 현재 산화질소의 배출량을 80∼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한가지 대안은 연소를 2단계에 거쳐 실시, 산화질소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즉 연료가 공기에 비해 농도가 짙은 1차 단계의 연소 이후 다시 새로운 공기와 섞어 농도를 연하게 한뒤 2차 연소를 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NASA와 보잉사는 기체공학적 디자인과 터널시험을 통해 비행시 날개표면에 생기는 공기저항을 40% 가까이 해소했다. 공기막이 불규칙하게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앞으로는 날개 표면에 작은 구멍들을 뚫거나 마이크로센서를 부착, 이를 자동조절함으로써 공기마찰을 80∼9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초음속항공기는 음속통과시 표면온도가 1백77도까지 상승하기 때문에 고열과 충격을 잘 견디면서 동시에 가벼운 재료가 필요하다. 현재 구상은 측연합성물과 티타늄을 기체부위별로 섞어 사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