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내가 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내가 아닌가. 도대체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꾼 것인가」(어느 사이버 10대의 고백).
어둠이 오면 컴퓨터속의 가상공간을 찾는 사이버 10대가 늘고 있다. 이들은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에서 이중의 삶을 산다. 가상 공간의 경험이 오히려 현실보다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게임 스토리안에서 만난 이성친구와의 이별을 훨씬 아프게 느끼고 게임안에서 맞은 자신의 죽음을 놓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이버 세계는 별천지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자신이 고른 캐릭터로 생각한 대로 마음껏 생활한다. 그곳엔 「선택」과 「창조」의 자유가 있다. 짜여진 틀에 따라 끌려다녀야 하는 현실은 이제 관심 밖이다. 온갖 시험과 자율학습…. 꼭두각시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으로의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사이버 10대는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끝나는 밤 10시 이후 활동에 들어간다. 이들의 주 활동무대는 주인공을 선택하고 줄거리를 만들어나가는 롤 플레잉 게임과 온라인 머드(MUD)게임.
지난 70년대말 미국에서 처음 선보인 머드는 수십명씩 동시에 통신에 접속해 벌이는 온라인 게임.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컴퓨터와 1대1로 벌이는 롤 플레잉 게임보다 훨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싸우거나 지혜를 겨루고 협력해가며 경쟁을 벌인다. 왕도 있고 무사도 있다. 평범한 소시민도 있다. 자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머드게임에는 또 하나의 작은 우주가 있다. 생로병사는 물론 감정 표현도 수백가지다. 통신 마니아인 한모군(18·K고 3년)은 『머드에 빠진 친구 중에 게임 스토리안의 여자 친구와 헤어져 실의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증언한다. 머드게임을 운영하는 회사에는 게임을 하다 자신이 죽었다며 울먹이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게임 마니아를 자처하는 권준모교수(33·경희대·심리학)도 『머드게임 안에서 나보다 더 센 상대에게 상처를 입어 일주일동안 「입원」 처분을 받은 경험이 있다』며 『현실공간에서 병원에 갇힌 것 못지않게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권교수가 받은 입원 처분은 일정기간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머드는 일반 게임처럼 화려한 그래픽이나 액션으로 눈길을 끄는 것도 아니다. 화면에는 오직 「글(텍스트)」만 떠다닐 뿐 초라하기만한 머드가 왜 이토록 인기일까. 머드는 혼자 컴퓨터를 상대로 승부를 벌이는 일반 게임과 다르다. 그곳엔 다른 사람과의 상호 관계가 있다. 게임 데이터를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 지나온 자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자신을 따라다닌다. 노력한 만큼 내 위치가 올라가고 성취감을 얻는다. 한마디로 「평등」한 세상이다.
권교수는 『TV 드라마나 영화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일치시켜 기쁨을 얻던 시대는 이미 옛날 얘기』라며 『다양한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요즘 세대에 어울린다』고 분석했다. 스스로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 바로 「인터랙티브」한 매력이 10대를 끌고 있다는 얘기다.
〈홍석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