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성큼 다가온 디지털 세상. 온통 디지털 기기로 중무장하고 하루를 보내는 디지털맨이 주위에 무수하다.
「삐삐삐삐」. D군(19·K대1년)의 아침은 머리맡에 놓인 전자 알람시계의 버저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다음은 노트북을 켜고 일정관리 프로그램으로 하루 스케줄 점검.
『오늘은 정오에 A를 만나 사진을 찍기로 했군』
A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D군의 여자 친구.
D군은 허리춤에 삐삐를 차고 디지털 방식 휴대전화를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노트북이 든 가방은 물론 어깨에 멘 채.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편해졌다. 지하철과 버스가 카드 한 장이면 끝. 토큰과 지하철표를 일일이 따로 사야 했던 번거로움은 이미 아득한 옛날 얘기다.
웬일이지, 약속 시간이 지났건만 A양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더니 역시 느리군』
D군은 주머니에서 전자수첩을 꺼냈다. 「A…」라고 입력한 후 버튼을 누르자 연락처가 화면에 바로 뜬다. 순식간이다. 전화를 걸어 아직 출발도 안한 A양을 재촉한 후 노트북을 꺼냈다. 시간을 때울 참이다.
『올 여름 방학엔 어디로 갈거나』
가방에서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CD롬 타이틀을 꺼내 돌려 본다. 종이에 인쇄돼 나오던 「아날로그」 책들도 이제는 디지털 방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실제로 보는 것처럼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화면을 확대하고 축소하는 것도 척척 이뤄진다. D군은 『역시 디지털이야』라고 중얼거린다.
A양이 나타났다. D군은 디지털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어 집의 PC로 보냈다. 사진은 파일 형태로 저장돼 언제든 다시 불러 쓸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를 감상한다. 사이버 페트와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벌써 디지털 데이가 저물었다.
〈홍석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