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LG바이오텍연구소,「살아있는 시약」실험동물 가득

  • 입력 1997년 5월 27일 08시 33분


두껍게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로 같은 복도가 나타났다. 간간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조그만 창이 뚫려 있을 뿐 온통 하얗다. 섬뜩할 정도로 조용한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곳은 대전 유성에 자리잡은 LG화학 기술연구원 바이오텍연구소. 각종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실험동물을 관리하고 실험하는 곳이다. 연구원 4명이 쥐 토끼 개 원숭이를 비롯해 3천마리쯤 되는 동물을 관리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김수헌연구원을 따라 처음 들어간 방은 실험용 흰쥐를 사육하는 곳. 바닥에서 천장까지 3면 가득 사과상자만한 우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우리마다 3∼5마리의 흰쥐가 들어 있다. 상자 앞에는 실험자 이름과 실험기간, 실험 내용 따위가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다. 간혹 검은 쥐와 털이 없는 「누드 마우스」도 있다. 돌연변이로 면역 기능을 상실한 채 태어난 누드 마우스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관리도 쉽지 않다. 개짖는 소리를 따라 「비글」이라고 적힌 방으로 들어섰다. 비글은 영국산 사냥개. 사냥감을 쫓아 들판을 달려야 할 몸이 사방 1m가 채 안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 배설물과 털 냄새 등이 섞여 몹시 역하다. 비글은 시가 1백만원이 넘지만 실험이 끝나면 모두 병원으로 옮겨져 해부용 실습 교재로 쓰인다. 기나긴 복도 끝 마지막 실험실. 수술대와 혈액채취기 등 각종 시설이 들어차 있다. 안락사된 실험동물이 옮겨지는 곳. 체내에 암세포나 병원균 또는 신약을 쓴 뒤 나타난 실험 결과가 이곳에서 「분석」된다. 혈액과 조직을 검사하는 실험이 끝나면 전문소각업체로 옮겨 태운다. 이 연구소에서만 한달에 7백㎏에 이르는 실험동물의 시체가 나온다. 지난 96년 한해 동안 국내에선 1백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됐다. 몇몇 연구소와 대학에서 실험동물을 「생산」해 보급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기관은 없는 상태. 이 때문에 「실험동물의 품질」이 매우 낮아 정밀한 실험을 하기에는 부적합한 실정이다. 실험동물을 관리하다보면 때로는 연민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연구원들은 스스로 반문한다. 이곳 연구소에서 동물은 일종의 「살아있는 시약」일 뿐이다. 〈대전〓홍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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