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칼럼]인터넷 공용어

  • 입력 1997년 7월 20일 20시 44분


인터넷을 하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言語)가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공용어」의 필요성은 전에 없이 절실해졌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가 제1외국어로 갈수록 각광받는 이유중 하나도 바로 인터넷 때문이다. ▼ 필요성 더욱 절실 ▼ 그러나 세계에서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 해도 인터넷상에서 영어 외의 다른 언어들이 사라진다거나 인터넷 때문에 어떤 소수 민족이 자기네 언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국어(國語)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어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없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내비게이터나 익스플로러와 같은 대부분의 웹브라우저는 요즘 모든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유니코드」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문자 하나를 저장하는 데 8비트의 정보를 사용했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유니코드는 16비트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이 기술은 최고 6만5천5백35종류의 문자를 표현할 수 있고 한글 중국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처리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웹브라우저처럼 문자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갖는 「맞춤법 검사」기능은 여기에 입력해 주는 맞춤법 정보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영어로 제작된 소프트웨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언어로 된 소프트웨어에도 다 포함돼 있는 이 「맞춤법 검사」는 요즘의 정보기술이 적어도 언어에 대한 편견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의 「출생지」가 미국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영어가 많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이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보다 정보검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나치게 영어를 많이 쓰는 인터넷이 비영어권 국가의 고유문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이와 반대의 기능도 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터넷 자체는 세계의 모든 언어로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과 이탈리아인 중국인들을 그들 고유의 언어로 묶어줄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관습과는 상관 없이 인터넷 상으로 신정과 구정을 같이 할 수 있고 언제라도 한국의 문화유산을 사진과 동영상 글로 검색해 볼 수 있다. 쓰기에 따라서 인터넷은 각 민족의 결속력을 훨씬 높여주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모든 언어를 자기나라말로 바꿔주는 번역소프트웨어의 출현을 손꼽아 기다린다. 마이크로소프트만 해도 한글 독일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 버전을 만들기 위해 매년 2억달러(약 1천6백억원)씩 쓰고 있다. ▼ 번역 SW 아직 미흡 ▼ 물론 제품 카탈로그나 대충의 문서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 번역프로그램 정도는 이미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계약서를 주고받거나 학술적인 논쟁을 벌이기에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오늘날의 번역소프트웨어 수준이다. 완벽한 번역프로그램은 적어도 앞으로 수십년간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흠 없는 번역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은 그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완벽한 번역프로그램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영어가 당분간 인터넷상의 공용어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리〓나성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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