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태양빛이 비치지 않는 깊은 바닷속.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심해저의 개발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심해를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개발이냐 보존이냐’에 대한 논쟁을 소개했다.
논쟁이 가장 뜨거운 곳은 해저 화산 근처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분출구 지역. 용암에 의해 데워진 물에 녹은 희귀한 광물들이 분출된 직후 차가운 해수와 만나 그대로 층층이 쌓인 곳이다. 양을 짐작할 수 없는 광물자원이 말 그대로 ‘노다지’처럼 묻힌 곳이다.
이 지역은 광물 자원의 보고(寶庫)인 동시에 지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생물의 낙원이기도 하다. 인간을 비롯, 생태계 탄생의 기원을 밝히는 열쇠가 여기에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개발인가 보존인가. 인간은 부(富)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탄생의 수수께끼를 풀 것인가.
아직은 전초전. 깊은 바닷속에서 광물 덩어리를 캐내 끌어올리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그리 쉽지 않아 본격적인 개발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변했다. 호주의 광산업체인 노틸러스사가 지난 연말 파푸아뉴기니 근해의 분출구 지역을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2년 동안 이 지역에서 1만t의 각종 광물을 캐낼 계획. 최근 이웃 일본도 이곳에 대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심해 분출구는 77년 갈라파고스군도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다. 장님새우 흰게 귀신고기 심해멍게…. 지상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의 생물이 가득했다. 과학자들은 신기했다. 태양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태양 에너지가 먹이사슬의 최초 공급원인 지상의 생태계를 생각하면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들 생물체가 지구 내부 열에너지와 각종 화학 물질을 먹고 살아간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지상의 생물에게는 치명적인 독(毒)이 포함된 물질도 이들에게는 유용한 먹이였다. 화산 근처 미생물의 유전자 구조가 초기 원시 생물로부터 직접 물려받은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태초의 바닷속도 이렇지 않았을까.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이와 같은 해저 분출구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미국 럿거스대의 피터 로나교수는 “분출구 지역은 생물 진화의 수수께끼를 밝힐 열쇠가 있는 곳”이라며 “이곳을 개발하면 인간은 과거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홍석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