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에 3년 내리 실패하고 지난해 9월 결혼한 김모씨(32·회사원). 매일 밤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보며 계속하는 자위행위. 엊그젠 갑자기 알몸으로 들이닥친 아내(31)로부터 “이혼하든지 나를 선택하든지 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벌써 5개월째. 통신 모뎀도 뜯어내 봤고 컴퓨터를 통째로 부숴버린 뒤 아내를 끌어안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1주일만지나면신혼의의무와 죄책감을 잊은채 모니터 앞에서 신음하고….
사이버 섹스.
▼ 언제나 ‘예스’라고 말하는 상대 ▼
‘세이프(Safe)섹스’라는개념에서 시작하는 온라인 섹스. 에이즈나 성병이 없고 윤리도 터부도 없다. 그래서 그만큼 대담하고 그만큼 무책임하다. 비싼 커피를 사주며 시구를 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신용카드 번호를 두드리고 집게손가락으로 ‘클릭’하면 20달러에 한달 내내 절대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여성들. 돈을 더 주면 ‘이런 자세를 취하라…’ 리얼 타임으로 명령하고 인종 피부색 신체사이즈 헤어스타일 손톱색상 립스틱색상 아이섀도 눈동자색깔 까지고른다.경제난에 고개숙인 남성들에겐 제2의창조주가 된 듯한 착각도….
온라인 섹스산업. 인터넷 웹사이트의 60%가 포르노, 모든 전자상거래의 80%가 성인잡지나 라이브 쇼 섹스용구 판매라는 보고도 있다. 국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제공하는 정보 서비스 톱10에는 성인정보가 한두개씩 꼭 끼어 있으며 전체 매출의 5∼15%를 차지. 인터넷 한글 정보검색엔진 ‘심마니’의 경우 전체 검색어 중 최다를 차지하는 단어는 ‘섹스’. ‘대학(2위)’과 ‘학교(3위)’를 눌렀다.
고글을 끼고 데이터 글러브와 바이브레이터를 착용한 채 가상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버추얼섹스(Virtual Sex)까지 실현되는 날엔 ‘호접지몽(胡蝶之夢·내가 꿈속의 나비인가 나비가 꿈속의 나인가 하는 장자의 얘기)’의 탄성과 함께 사이버섹스산업은 어떻게 ‘번창’할 지.
“죄악시하는 건 잘못이다. 사람마다 성욕에 차이가 있듯 성적 취향도 다르다. 사이버섹스로 성욕이 해결돼 미래사회엔 결혼이 줄어들 거라는 주장은 억측이다. 생물학적 욕구해결의 한 방법, 삶의 일부분이라고 이해하자. 주부들이 남편의 자위행위를 용서하는 것처럼.”(한마음신경정신과 이규환박사)
인간 성감(性感)의 90%는 대뇌의 상상, 10%가 신체적 감촉. 많은 남성들이 사이버섹스를 즐기는 이유는 가학도 도착도 아닌 인간적 판타지(Fantasy) 때문? “포르노비디오를 보며 ‘저 남자배우가 정말 부럽다’던 청년기의 ‘꿈’이 사이버 공간에서 반쯤 실현됐다”고 말하는 남성들.
캐나다 제임스 올스와 피터 밀러의 실험. 쥐를 두 개의 버튼이 있는 작은 방에 가둔다. 한쪽 버튼을 누르면 먹을 것이 나오고 다른 쪽을 누르면 쥐의 뇌(시상하부)에 장착된 자극기가 작동해 ‘쾌락 중추’를 자극한다. 쥐는 쾌락버튼만 수백 번 미친듯이 누르다 뇌가 타 죽었다. 남자는 쥐가 아니다. 그럼에도 ‘온라인 포르노에 자극받은 남성들로 인해 성범죄가 늘어날 것’이란 해악설. ‘미니스커트 때문에 성범죄가 늘어난다’는 주장처럼 근거없는 얘기지만 때론 뜬금없이 ‘발동’걸리는 남자도?
▼두부는 결코 쇠고기가 될 수 없다 ▼
“사이버 섹스는 성관계 만큼 만족을 줄 순없다.어떤환상도실제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치즈햄버거를 사먹듯 컴퓨터를 통한 섹스를 선택(구입)할뿐이다.소설이나 영화를 보는것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걸 분명히하자.”(연세대심리학과 황상민교수)
‘쿨리지효과’. 상대가 바뀌면 성행위 횟수와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 사이버섹스 탐닉은 부부관계에 대한 불만족에서 잉태되지도 않고 불만족을 초래하지도 않는다는 해석이 많다.
“미국의 경우 발기불능 조루 등 성장애가 있는 독신남에게는 ‘대리처’를 통한 치료가 법적으로 허용된다.이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국내에선 PC통신상의 채팅등 사이버섹스를 이용,성기능 장애에 시달리는 남성을 치료할 여지가 충분하다.”(한국성의학연구소 이윤수박사)
단순한 성욕 자극이 아닌 ‘배출’을 위한 과정과 장치(섹스 토이·Sex Toy 등)를 전제로 한다면 사이버섹스는 교도소 군대 우주선 남극기지 근무자와 부부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정의 경우 ‘외도’라고 몰아세울 수 있을까.
“청소년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할 뿐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은 무의미하다. 이미 우린 그 안에 있는 것이다.”(‘문화과학’ 홍성태편집위원)
사이버 전문가들이 말하는 ‘두부와 쇠고기’의 비유. 한때 쇠고기와 똑같은 맛과 느낌을 준다는 두부가 화제였다. 분명 콩인데 씹어보고 맛을 보면 정말 쇠고기 맛. 그럼에도 쇠고기는 건재하고 두부보다 비싸다. 사이버섹스. 결코 노총각인 나를 꿋꿋하게 하거나 아름다운 내 아내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접속’보다는 ‘접촉’을 더 사랑하도록 생겼났기 때문이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