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혜성같이 ‘유머계’에 등장했던 사오정. 현재 PC통신망 유머란의 ‘간판스타’다. KBS 2TV에서 90년말 방영됐던 허영만원작의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현재의 캐릭터가 선보였다. 하이텔의 유머란에 올라있는 그의 얘기만 4백여건. 최불암 만득이 펩시맨 김밥 등 쟁쟁한 호적수들을 물리치고 올 여름 유머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최근 사이버공간에서는 사오정퇴출론이 강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반짝 인기에이어 소재고갈에 시달리다 과거이야기의 패러디를 거쳐 사라지는 요즘 유머의 생성소멸과정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 ‘썰렁함의 미학’은 썰렁해지는 순간 퇴출의 운명에 처한다.
현재까지 묘사된 사오정은 청각의 ‘성능’이 좋지 않으며 ‘뭐라고(高)’를 졸업하고 ‘뭐라칸대(大)’에 재학중이며 ‘다시 한번 말해바’를 즐겨 먹고 ‘안들려요’를 깔고 잔다.
사오정이 사이버공간에서 대중성을 확보한 첫 케이스. TV를 보던 사오정. “오정이형, 냉장고에 있는 사이다 먹어도 돼?”라는 동생의 물음에 묵묵부답. 동생은 재차 떼를 쓰며 물었다. “형,사이다 먹어도 되냐고?” 사오정은 귀찮다는 듯,“야! 글쎄 넌 가서 사이다나 먹어!”
그뒤 청각장애 친구끼리 ‘사오정카페’에 드나들었다. 사오정1〓“난 우유.” 사오정2〓“그럼 난 우유.” 사오정3〓“그럼 나도 콜라.” 사오정4〓“그럼 콜라 네잔 주세요.” 주문받던 사오정 웨이터 왈.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에선 율무차가 안 되는데요….”
푹푹 찌던 ‘IMF더위’를 특유의 썰렁함으로 식히며 인기몰이에 성공한 사오정. 몇몇 TV프로와 CF에 출연했다. 국군장병 위로프로인 ‘우정에 무대’의 장기자랑시간에 불려나간 사오정사병. “어떤 재주가 있으신지요?”는 질문에 “뒤에 계신 어머니는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대답. ‘TV는 사랑을 싣구’에서는 “누구를 찾아 나오셨습니까”라는 물음에 흰봉투를 꺼내들고 말했다. “4만원 벌었습니다.”
핸드폰 광고에는 ‘겹치기 출연’했다. 촬영중 소나기를 피하던 사오정. “삐리리릭.”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인은 “여보,잠깐만!”하며 사오정 아기의 입에 수화기를 갖다 댔다. “‘아빠’해봐! 아빠!”잠시 뜸을 들이던 사오정 아기의 입에서 터져나온 첫마디. “아빠빠빠빠!”사오정은 멋쩍은 듯 주위 사람에게 말했다. “‘엄마’래요.”
다른 핸드폰 광고에서는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대나무 숲속을 걷고 있을 때 울리는 핸드폰. “삐리리리리∼.” “세상을 떠나 있고 싶을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대사를 하게 돼있던 사오정이 삼장법사를 번쩍 들쳐안고는 절벽을 향해 달렸다. 사오정은 주저없이 뛰어내리며 외쳤다. “본부! 탈출한다!”
현대인의 대화단절과 남의 얘기를 멋대로 곡해하는 세태를 꼬집었던 사오정. 너무 빨리 ‘떴기’ 때문일까. ‘역전 보청기집에서 보청기를 구입했다’ ‘묵은 귀에지를 파냈다’는 등 그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부정과 함께 퇴출론이 나오고 있다. ‘버전 업’된 그의 소식도 매일 10여개씩 PC통신 유머란에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이야기에 사오정을 대입해 흉내만 낸 정도.
한편으로는 ‘컴플렉스’를 극복한 사오정의 애정행각도 조심스레 전해졌다. 사오정이 매력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한밤의 공기는 싸늘했고 얇은 옷차림의 애인은 사오정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자기, 나 추워!” 한여름인데도 가죽잠바를 입고 ‘터프’하게 오토바이를 몰던 사오정이 씩 웃으며 한마디. “그래,나도 사랑해!”사오정은 정색하고 단언한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사오정이 된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