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사장이 음화 전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사세(社勢)가 기울기 시작했고 김씨는 결국 올해 3월 회사를 그만뒀다. 밀린 월급은 끝내 받지 못했다.
그 후 다른 벌이를 찾아 뜻맞는 친구들과 조그만 부가통신업을 시작한 김씨는 무료하다 싶으면 옛직장 H사의 전산망에 ‘침입’하곤 했다.
5월 초순. 김씨는 여느 때처럼 옛직장의 사이트 이곳 저곳을 누비다 자기 손으로 남긴 낯뜨거운 ‘작품’들을 발견했다. ‘특집! 비비안 슈’ ‘쇼킹 저팬’ ‘성인 애니메이션’ ‘웨스틴 글래머’ ‘정력증강법’ 등.
김씨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움과 함께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은 회사에 대한 원망이 솟구치면서 야릇한 눈빛의 벌거벗은 여인들을 가상공간에서 지워내기 시작했다. 그가 날려버린 음란사진이 무려 9백60여장.
검찰 정보범죄수사센터는 7월 ‘해커’ 김씨를 적발, 전자기록 손괴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가상공간의 포르노’를 무찌른 ‘사이버 패트롤’ 역할을 한 김씨를 선처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 “불법적인 전산망 침입행위는 정보화시대의 적(敵)”이라는 판단으로 처벌했다는 후문.
그러나 서울지법 형사1단독 김창석(金昌錫)판사는 28일 “성인용음란물은 법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적다”며 김씨에게 선고유예판결을 내리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범의(犯意)가 약하고 피고인의 장래를 고려, 전과가 남지 않는 선고유예를 판결했다”고 밝혔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