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육지에 들어서면서 시속 4㎞로 이동속도가 뚝 떨어지더니 오후9시경부터는 전남 보성지방에서 멈춰있다가 결국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간당 43㎞의 빠른 속도로 북상중이던 ‘예니’가 갑자기 이동을 멈춘 까닭은 뭘까.
기상청은 태풍이 보통 육지에서는 높은 산 등 지형지물을 만나 속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처럼 한자리에 머물다 소멸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태풍 ‘예니’가 이동을 멈춘 것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한반도 부근까지 남하한 대륙성 고기압 때문이다.
태풍을 북동쪽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줄 지상 16㎞ 상공의 편서풍대가 대륙성 고기압에 밀려 한반도에서 맥을 못추는 바람에 태풍이 추진력을 잃었던 것.
가을 태풍인 ‘예니’가 여름 태풍과는 달리 이동중 해상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 세력이 약해진 것도 원인이다.
태풍이 정체하면서 만들어낸 저기압은 영남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동해상의 차고 습한 공기를 쉴새없이 끌어들여 강한 비구름대를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실제 태풍이 닥치지도 않은 포항 등 경북 동해안지방에 6백㎜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보통 가을에 발생하는 태풍은 일본 규슈(九州) 북쪽해안을 타고 통과하지만 이번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진로를 한반도로 바꿨다”면서 “엘니뇨의 여파로 기단배치가 불규칙해지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