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극도로 침체했을 때 기업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구조적으로 타개하려는 차원에서 빅딜논의가 출발했던만큼 시장회복이 가시화하는 현재 시점에선 추진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빅딜무용론’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인 현대와 LG측 실무자들은 “반도체 빅딜로 이득을 보는 측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라며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컨설팅비용도 무모하고 컨설팅과정에 제공되는 각종 경영상 기밀이 경쟁업체에 넘어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며 빅딜의 재고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시장 회복 조짐〓국내 3사에 이어 일본 대만 등 반도체 경쟁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축소하거나 감산에 들어감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가격의 회복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최근엔 미국의 마이크론사가 저가공세로 가격폭락을 부채질하며 미국시장을 교란해왔던 13개 대만 반도체업체를 모두 반덤핑혐의로 미국 무역위원회(ITC)에 제소, 반덤핑관세를 물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따라 대만업체들은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출가격의 8%정도를 관세로 예치해야 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업체들엔 수출호재로 작용할 전망.
반도체 가격은 현재 미국 현물시장에서 64메가싱크로너스D램(8×8메가 기준)이 개당 10.2달러선으로 바닥세였던 올 상반기의 7달러보다 45%나 올랐다. 16메가D램 가격도 지난 상반기 개당 1.38∼1.49달러까지 떨어졌으나 현재는 2.06∼2.23달러대로 50%가량 상승했다.
세계적인 반도체시장 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D램가격의 폭락으로 96년 이후 침체를 면치 못하던 반도체시장이 99년 이후에는 연평균 20%수준의 고성장기로 재진입할 것으로 전망.
▼반도체시장과 빅딜의 함수관계는〓반도체가격이 급등하며 물량이 달릴 조짐을 보이자 IBM 등 해외의 대형컴퓨터업체들은 국내업체에 장기공급을 요청하고 나서는 등 안정적인 물량확보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
LG는 최근 IBM으로부터 장기공급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며 대만 LCD조립업체와도 장기공급 가계약을 체결했다. 또 현대도 휼렛팩커드 IBM 등과의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으로 반전됐다.
반도체시황이 호전되자 현대와 LG는 통합반도체회사 설립에 합의해 놓고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종래보다 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재계에서도 “반도체경기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는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빅딜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며 빅딜무용론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누굴 위한 컨설팅인가〓경영주체 선정을 위한 실사작업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현대와 LG는 경영주체 선정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외국 컨설팅회사를 선정해 공정한 평가작업을 맡기기로 한 상태. 현재 LG가 추천한 AT커니와 현대가 추천한 베인&컴퍼니 양사를 놓고 컨설팅업체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컨설팅 비용만 해도 하루에 수십만달러씩 총 수백만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개별기업 실사과정에서 생산 노하우나 수율 등 기업기밀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이영이·박래정기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