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투자한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온 이 펀드매니저는 그러나 국내의 한심한 투자환경에 허탈함만 느꼈다.
한달여간 정부부처와 전국 각지의 연구소를 돌아다녔지만 신기술의 사업성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적절한 투자처를 상담해줄 만한 기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고작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우리는 이런 특허 몇 건, 이런 기술 몇 건을 갖고 있다”는 수준이었다. “얼마를 투자하면 몇 년안에 이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이런 투자환경에서는 도저히 한국에 투자할 수 없겠다”는 말을 남긴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오랩의 사례에서 보듯 벤처기업의 정보 네트워크를 잘 구축한다면 돈가뭄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창업투자회사 등 ‘벤처캐피털’이나 은행에는 벤처기업이 쓸만한 돈이 쌓여있지만 적절한 투자정보가 없어 돈이 갈 곳을 못찾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경제의 미래를 벤처기업에 걸고 있는 정부는 97년 하반기부터 대대적인 벤처대상 자금지원을 유도하고 있다. 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창업투자사만 해도 71개 업체에 2조1천억원(2월말 기준)이 출자돼 있고 한국종합기술금융 등 신기술금융사도 4개나 된다.
이밖에 개인투자조합인 엔젤클럽이 8개 설립됐고 시중은행들은 벤처기업용 자금한도를 설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못해 은행이나 벤처캐피털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 투자하기 어려운 상태. 전경련 산하 국제산업협력재단이 최근 정부 부처의 벤처기업 관련 정보를 파악해본 결과 △사업자등록번호 △대표자 이름 △소재지 △연락처 △생산품목 등 초보적인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회사대표와 임직원들의 이력, 연구능력과 축적기술, 사업성 등 투자에 필요한 정보는 거의 없는 실정.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산하기관이 벤처인증 심사시 구체적인 투자정보를 축적하고 있지만 ‘해당기업의 비밀유지를 위해’ 각서제출 등 예방조치를 취한 뒤 투자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벤처기업 N시스템 대표는 “금융권에 벤처자금이 충분히 쌓여있는데도 예상수익과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체제가 전혀 갖춰지지 못해 2천5백여개의 벤처기업중 상위 몇개사에 자금이 편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래정·김홍중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