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이라는 디지털신호의 이진수(바이너리·binary)로 사고하는 인공두뇌. 그 두뇌가 인간같은 육체를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바이너리 코드’(궁리출판사)는 유전공학을 통한 인간복제와 인공지능 등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그렸다.
저자는 현재 고려대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노성래(25). 인터넷 딴지일보에 게재된 뒤 3개월만에 조회수 6만회를 넘는 등 인기를 얻자 출판사가 재빠르게 종이책으로 출간했다.
장편 ‘피라미드’(자작나무, 새로운 사람들 공동출간)는 카오스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종호(51)의 작품. 혜성충돌로 폐허가 된 한 별의 재건기를 그렸다.
세대가 다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활동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작가는 이공계 학문을 전공했다는 점, 과학기술 뿐 아니라 문학 철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췄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주목받는 작가로는 지난해 SF단편소설집 ‘나비전쟁’(오늘예감)을 펴낸 이영수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SF동호인들 사이에서 “국내저작이 아니라 번역서라고 여길만큼 수준이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독특한 점은 저자 이영수가 DJUNA라는 통신 ID만 확실할 뿐 ‘20대 초반의 철학전공 여성’으로만 추정되는 익명의 인물이라는 것.
SF평론가이며 번역가인 박상준은 “상상으로만 창조한 공간에 관한 얘기를 즐기는 경향이 한 갈래는 팬터지, 다른 한 갈래는 과학적 설명을 부여하는 SF로 발전하는 것같다”고 분석.
서구에서는 19세기말부터 줄 베르느의 ‘달세계여행’ 등이 나오며 과학소설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마이클 크라이튼 등이 미스터리 액션을 결합한 작품을 써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싱크뱅크’역할을 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과 더불어 자라온 신세대에게 SF는 특별한 문학장르가 아닐지 모른다. ‘바이너리 코드’의 저자 노성래는 “SF를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쓴 것 뿐”이라고 말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