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방종' 더이상은 안된다…'기준 제정' 움직임

  •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과학은 21세기에도 ‘도덕적 가치중립’을 소리높이 외칠 수 있을까.

인간복제와 가상공간 핵융합과 인공지능…. 과학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던 결과물을 인류 앞에 던지고 있다. 과학이 법제도와 사회인식을 앞질러 나가는 ‘속도위반’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증폭하고 있다. 학계가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세기말 화두로 던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계간지인 ‘자연과학’은 최근 과학사 종교 철학 법학 행정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에서 이 화두에 접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자들은 과학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기전에 ‘과학의 히포크라데스선서’와 같은 기준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산업대 이봉재교수(인문학과)는 20세기 후반을 “사악한 과학, 위험한 과학을 경험하는 시대”로 정의하고 “따라서 과학활동에 어떤 통제도 가하지 말자고 선언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규정했다. 과학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만큼 ‘순수과학’이 유해한 결과로 ‘돌변’하기 전 과학에 대해 적절한 통제를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전북대 오진곤교수(과학학과)은 “과학자는 연구결과에 대해 노벨상과 같은 명예나 물질적인 보상을 받아왔다”며 “그렇지만 핵무기를 연구한 과학자에게는 왜 아무런 책임추궁도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오교수는 “연구결과가 과학자 집단이나 일반사회에 끊임없이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학의 가치중립’에 대해 철학과 종교학자들은 더욱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종교가 무한책임을 진다면 과학은 행위의 직접결과에 대해 유한책임을 졌다. 따라서 과학의 공리주의로 인류 자유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양명수교수) “인류가 종말을 초래할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도 우리는 과학 기술에만 기댄다. 이것은 오만과 독선이다”(계명대 철학과 이진우교수)

과학에 대한 법적 제재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화여대 박은정교수(법과대)는 “과학은 지난 세기 궁핍에 의한 비인간화를 해소했지만 이 시대에는 과잉에 의한 비인간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이제는 연구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보다 과학의 윤리와 의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이영희교수(사회학과)는 “과학이 산업적 기업적 가치에 치중할 경우 시민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전문가들이 독점했던 과학기술의 논의과정을 시민사회에 개방해야만 과학기술의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이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송성수연구원은 “과학자 스스로 자신의 연구에 따른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로트블랫박사가 제안한 과학의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우리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수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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