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게임 테러 비상…상대방 직접 찾아가 폭행

  • 입력 1999년 12월 27일 20시 00분


지난달 초 서울 서대문구의 한 게임방에서 PC게임을 즐기던 대학생 송모씨(22)는 게임 도중 어이없는 봉변을 당했다.

게임방에서 이날 새벽 ‘리니지’게임에 몰두해 있던 송씨는 느닷없이 나타난 20대 청년 10여명에게 끌려나가 집단 폭행을 당한 것. 자신들을 ‘대구 건달들’이라고 밝힌 청년들은 “너에게 아이템(창 방패 등 게임내 소유물)을 모두 빼앗겼다”며 송씨를 위협해 컴퓨터내 계정에 보유중인 200만원 상당의 전리품들을 빼앗아갔다.

최근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 온라인 머드게임이 PC방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게임결과에 불만을 품고 상대를 찾아 폭력과 위협을 행사하는 이른바 ‘현실PK(플레이어 킬링의 약자)’가 국내에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특히 이같은 게임테러에는 게임에 불만을 품거나 금전적 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빼앗으려는 폭력배들까지 개입하거나 동원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머드게임은 ‘통신망을 이용하는 다중참여자 오락’을 일컫는 말로 지난해부터 PC게임방에 보급되기 시작해 최근 이용자 수가 수백만명에 이를 만큼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있다.

‘현실PK’는 게임 도중 ‘사이버PK’를 당한 이용자가 현실세계에서 상대방을 찾아내 폭행과 위협으로 빼앗긴 아이템을 되찾는 행위. 머드게임의 유행과 함께 게임내 무기와 재산 등의 현금거래가 가능해지면서 도난이나 해킹뿐만 아니라 이같은 ‘현실PK’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폭력행위는 주로 높은 레벨의 이용자들이 게임을 하는 위치를 알아낸 뒤 직접 찾아가 위협하고 아이템을 빼앗아 이를 자신이 소유하거나 제3자에게 처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게임이 대부분 게임방에서 이뤄지면서 이용자의 위치 등에 관한 정보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가능하다.

취재팀이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이용자들간의 채팅과정에서 모니터에 “ID **의 위치를 알려주면 사례하겠다”는 메시지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현실PK에 폭력배 등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 머드게임의 특성상 이용자들 간에 그룹이 형성되고 고수가 레벨이 낮은 사람의 뒤를 봐주는 등 현실의 폭력조직세계와 유사한 구조를 갖기 쉽다.

서울 신촌의 한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김모군(19)은 “얼마전 폭력배로 보이는 남자들이 ‘사이버PK를 보복하겠다’며 게임방에 들이닥쳐 어린 학생을 위협한 뒤 아이템을 빼앗아갔다”면서 “최근 PK를 섣불리 했다가는 폭력배에게 봉변당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머드게임의 현실PK로 폭행당한 이용자들의 신고도 최근 크게 늘고 있는 추세.

서울 성동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폭력배 등으로부터 위협이나 폭행을 당하고 전리품 등을 빼앗겼다는 신고가 매주 20∼30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부작용에 대해 게임 운용사나 게임방 업주측은 “폭력문제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며 방관하고 있는 입장.

리니지게임을 개발해 운용중인 엔씨소프트측은 “최근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아이템이 현금거래나 갈취의 대상이 되는 등 부작용이 일고 있다”며 “그러나 게임을 둘러싼 분쟁에까지 회사가 개입할 권한이 없어 본인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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